교무수첩

수능이 끝나고 난 후

사회선생 2019. 11. 28. 08:41

수능이 끝나고 난 후 고3 교실은 늘 그렇듯이 아무 규칙도 원칙도 없는 청소년 쉼터이다. 8시에 1교시 종이 쳐서 담당 교실에 들어갔더니 28명 중6명이 앉아있다.

"이게 뭐야? 다 어디 갔어? 안 온거야?"

"원래 절반 쯤은 안 오구요, 나머지는 한 9시쯤 나타날 거에요."

교복도 없고, 머리 색도 자유로워서 얘들이 내가 가르쳤던 걔들 맞나 싶다. 교실 모니터에서는 영화가 나오고 있었지만 교실에 있는 그 6명도 영화에 집중하지는 않았다. 그냥 친구들과 수다 떨거나 혼자서 스마트폰 가지고 놀거나...  

교실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교사가 뭘 해야 할까? 중앙에 자리 잡고 앉아서 떠들지 말고 영화보라고 강요 해야 할까?  떠들지 말고 자라고 해야 할까? 그냥 그들이 뭘 하든 말든 나는 내 시간 떼우면 되니까 교실에 앉아서 나도 걔들처럼 나 하고 싶은거 하다가 나오면 되는걸까?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나왔다. 솔직히 교실에 앉아있기가 민망했다. 내 자리도 없고, 내가 할 일도 없는 공간에 내가 앉아있는 느낌이다. 물론, 학교에서는 교사에게 임장 지도 하라고 한다. '임장'은 하겠는데 뭘 '지도'하라는걸까? 종칠 때까지 나가지 말고 교실에서 꼼짝 말라고? 나가서 사고 치면 곤란하니까?  

작년에는 없었던 새로운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3학년은 무상급식 대상자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안 나와서 학급 정원대로 신청한 급식의 잔반이 너무 많이 남는다고 한다. 모두 예상했던 일이건만, 왜 교장들은 예상하지 못하고 급식 신청을 했을까? 우리는 교육청에서 시키는 대로 정상적 운영을 하고 있다는 티를 내야 하니까?  어떻게 이 시기에 급식 신청을 해서 그 많은 혈세를 낭비하는지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정말 그들이 고3 교실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자신이 있어서 그랬을까? 그렇게 생각했다면 무능한거고, 정상적으로 운영할 자신이 없음에도 급식을 신청한거면 부도덕한거다. 윗사람들의 무능과 부도덕은 아랫 사람들만 힘들게 한다. 그리고 사회 전체적으로 미치는 해악이 딱 그 권력만큼 크다. 그리고 그 해악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 학교만 그런게 아니라 전국의 고 3 교실이 이럴텐데 교육부와 교육청이 못하면 개별 학교 차원에서라도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요즘같은 책임 폭탄 돌리기의 시대에 어느 누구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설 수가 없다. 그냥 '무능하다, 부도덕하다' 욕 먹는게 낫지, 교육청에서 시키는 대로 안 해서 학생 사고라도 발생하면, 교장이고 교감이고 옴팡 책임 뒤집어 쓰고 행정 징계 수준이 아니라 형사 처벌 수준까지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난감하다. 이 역시 교육부와 교육청의 무능함으로 벌어진 일이라는 생각을 나는 지울 수가 없다. 정말 딱 권력만큼 많은 이들에게 해악을 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