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사석에서 어느 교수가 한 말이 생각난다.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가정의 자녀들이 대학원 공부했으면 좋겠다고... 그래야 다른 데에 신경 쓰지 않고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고, 공부를 마친 후에도 당장 자리 만들어줘야 하는 부담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 그런데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공부를 하면 공부를 하는 기간 동안에도 장학금이나 연구비 신경써서 챙겨줘야 하고, 공부 끝나면 제대로 된 취업 자리 알아봐 줘야 하는데 이게 교수로서 부담이 크다면서 당시에 매우 힘들어했다. 사실 대부분의 교수들은 거기까지 신경도 안 쓴다. 그 교수는 정말 제자를 아끼는 마음이 큰 교수였기때문에 그런 말을 한거다. 학생과 자신의 한계가 가끔 부담스러웠나보다.
정시 비율이 높아진 정부의 입시 개혁안에 대해 대학은 불만이 많은가보다. 뽑고 싶은 학생을 뽑아야 하는데, 정시는 그런 자율성(?)을 발휘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그 동안 입시로 거둬들였던 수익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고등학교 공교육을 걱정했다고 이제는 학교 교육이 무너진단다. 학교 교육 무너지는거 걱정스러우면 입시 일정이나 좀 바꿔주시지...)
논술로 뽑으면 - 심지어 최저도 없는 논술이면 - 경쟁률이 적게는 30대에서 높게는 100대까지 간다. 전형료 수익이 짭짤하지 않을 수 없다. 뿐인가? 학생부 종합전형도 비교과 전형 방식을 매우 다양하게 만들어서 외우기도 힘든 거창한 이름으로 만들어 호객해 왔다. 마치 성적이 나빠도 스펙 좋으면 합격할 수 있을 것처럼... 그래야 경쟁률이 높아져서 이윤을 창출할 수 있으며 동시에 자신들이 원하는 학생들을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와 많은 입시학원을 쥐고 흔들었다. 그리고 컨설팅인지 뭔지 이런 곳들만 장사하게 해 줬다. (대학 가고 싶으면 학교 공부 열심히 잘 하면 됐지 무슨 컨설팅이 필요한걸까? 정말 정신 나간 입시 공화국 대한민국!)
문득 대학이 정말 원하는 인재상 뭘까 궁금해진다. 기본적인 국영수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수업 시간에 교수의 말은 알아들을 수 있고, 중산층 이상의 가정 배경을 가지고 있어서 등록금 걱정은 안 해도 되는 학생이 그들이 바라는 인재상같다. 어차피 서울의 상위권 대학은 이 두 가지 모두 별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데 (공부를 잘 하는데 경제적으로 하층 가정 배경을 가진 학생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중하위권 대학으로 가면 이 두 가지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거다. 대학재정도 점점 어려워지고 존립의 가치까지 논의되는 때에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정시, 수시 반반씩 뽑고, 대학 전형 일정 통합해서 12월에 한꺼번에 둘 중 하나에 지원하도록 하고, 수시는 학생부의 비교과 말고 교과 능력만 보는 수준으로 정리됐으면 좋겠는데, 그냥 정시 절반 정도로 확대하는 수준에서 정리됐나보다. 학생들이 정시 수시 다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다고? 둘 다 하면 어떤가? 대학가겠다고 작정했으면 공부해야지. 쓸데없이 참가자 30명도 안 되는 시답잖은 경시대회 수 십개씩 만들어 에너지 낭비하게 하는 비교과 전형인 학종 말고, 수업 시간에 열심히 공부하도록 만드는게 더 낫지 않은가? 수시를 내신과 교과 중심으로 가는게 맞는데, 정시를 더 확대하는건 조금 걱정스럽긴하다...
'교무수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험 문제 재밌지 않니? (0) | 2019.12.10 |
---|---|
우리에게 툰베리가 없는 이유 (0) | 2019.12.04 |
수능이 끝나고 난 후 (0) | 2019.11.28 |
동료교원평가 (0) | 2019.11.25 |
일사는 쉽고 역사는 어렵다고? (0) | 2019.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