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명

황윤 감독을 만나다

사회선생 2019. 6. 26. 01:00

7년 전쯤, 열정적으로 크레인 구조 운동을 벌이던 모습이 황윤감독에 대한 내 첫번째 기억이다. 이후 그에 대한 호기심으로 영화 '작별'과 '어느 날 그 길에서'를 접했고, 한 번 쯤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다. 이 척박한 환경에서 동물을 보는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고, 오히려 그 범주를 확대해가며 신념 대로 사는 모습이 존경스러웠고,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페북에 들어가 친구 신청까지 하고 아주 가끔 기웃거렸다. 총선 당시 녹색당 비례대표 1번으로 나왔을 때에는 원내 진출을 간절히 바라기도 했다. 동물권을 명시적으로 대 놓고 실현하겠다고 약속한 정당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내가 친구 신청한 페북 친구는 5명쯤? 미국 사는 동생네 빼면 황윤, 박소연, 전채은, 이굴희. 모두 동물권 운동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녀가 '사랑할까, 먹을까'의 저자로, 증산도서관에서 강연을 한다는 것이 아닌가? 와, 동네 도서관의 수준이 이렇게 좋아지고 있다니,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냉큼 신청하고 기다리며 책을 읽었다. 오래 전 영화의 여러 장면들이 떠오르며, 또 가슴이 울렁거리고 자꾸 눈물이 났다. 갱년기 증상인지 지나친 감정 이입때문인지 아무튼 자꾸 눈물이 났다. 돼지 공장을 봐도, 십순이 사진을 봐도, 돈수 눈망울을 봐도, 심지어 나중에 돈가스 이야기가 나오는 데에도 자꾸 눈물이 나서 주체하기 힘들었다.(미쳤나봐 주책이야 이게 눈물 포인트가 될 수는 없잖아. 그런데도 눈물이 났다.) 

그런데 이게 갱년기 증상은 아니었다. 20대 많아도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증산도서관의 사서가 책을 소개하면서, 눈물이 났다는게 아닌가? 그녀는 황감독을 소개하는 도중에도 그 생각이 났는지 울먹거렸다. 아, 다행이다. 갱년기 증상이 아니라 그냥 동물과의 감정 이입 감수성이 조금 남다른걸로! (그런데 그런 감수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육식을 단호하게 끊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두 가지 정도가 떠오른다. 논리적 이해만으로는 오랫 동안 사회화된 습관의 단절을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과 채식주의로 사는 것은 사회 생활에서 관계의 단절 혹은 사회적 소수자 취급을 받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수도.) 

다시 황윤 감독 이야기로 돌아와서, 황감독은 자신이 필요한 곳이 아닌,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풀뿌리 운동의 방식으로 자신의 신념을 설파하고 다니는 듯 했다. 한 명이라도 더 관심을 갖게 된다면, 그것이 동물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는 일이라고 믿으면서.... 그는 동물복지, 환경보호, 그리고 해결책으로서 채식주의 대안까지. 매우 설득력있고 생동감 있는 자료들로 이야기를 풀어냈고 두 시간이 후딱 갔다.

끝날 때 쯤, 그에게 낮에 학교에서 쓴 팬레터(?)를 전하며 - 나는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들을 내가 여기저기 교재에 인용하고 싶어서 안달을 하고 있으니까 -  헤여졌다. 언젠가 또 다른 자리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리고 집에 왔는데 PD 수첩에서 케어의 박소연 대표의 행태에 대해 보도하고 있었다. 케어는 내가 10년 이상 후원을 했던,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동물 구조 활동을 했던 동물보호시민단체였다. 그런데 박소연 대표의 열정이 독단과 만용으로 이어졌나보다. 보호소 운영의 편의를 위한 살처분을 자행해 놓고, 안락사라고 둔갑시켜 논점을 일탈시키려고 하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때에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며 이건 아니라고 이러면 안 된다고 했지만 - 그리고 나같은 사람이 정말 많았을것 같지만 - 그녀는 사과를 하지도, 자리에서 물러나지도 않았고, 나는 결국 11년 후원을 끊었다. 참 마음이 아팠다. 동물보호에서 가장 큰 조직이었던 케어가 그렇게 무너지다니....

오늘 헤여질 때에 황윤감독이 준 돈수 사진을 꺼내 본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느끼게 해 주는 사진이다. 그런데 돈수의 눈망울을 보고 있자니 또 눈물이 뚝. 내 옆에서 자고 있는 토리와 해리의 눈빛과 똑같다. 내가 먹은 돼지고기가 살아 있을 때의 눈빛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참 힘들어진다. 내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황감독의 강연은 또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습관대로가 아니라 신념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