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애완견과 식용견이 다르다고?

사회선생 2010. 8. 3. 22:17

개고기 식용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애완견과 식용견은 다르다고.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가? 개를 바라보는 사람의 생각이 다를 뿐 개의 속성은 같다.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자랐느냐에 따라 애완견과 식용견의 운명이 결정된다. 심지어 애완견으로 자라다가 버림받아 식용견이 되기도 하고, 식용견으로 사육되다가 너무나 운이 좋게도 지나가던 사람에게 입양되어서 애완견이 되기도 한다. 둘의 운명은 인간이 결정할 뿐 - 그것도 순전히 인간의 기준인 순혈이냐 혼혈이냐 크기가 작냐 적냐 등등에 의해서 - 개의 특성이 다른 것은 아니다. 인간의 훌륭한 벗이 되어주는 소위 잡종견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종자, 즉 유전자가 반려견과 식용견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흑인은 백인을 위해서 태어난 존재이므로 노예 제도는 당연하다고 했던, 그러면서 인간으로서의 속성이 동일함을 부정했던 이기적인 강자들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

개고기 식용찬성론자들은 또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은 돼지와 소와 닭은 왜 먹냐고, 그들은 너희들이 아끼고 사랑해야 할 동물 아니냐고. 그렇게 육식을 하루 아침에 끊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기에 섣불리 주장하지 못한다. 하지만 사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돼지와 소와 닭도 사냥해서 먹는 시대라면 모르지만 이렇게 비위생적으로 대량 사육하여 도살해서 먹는 육식 문화가 인간의 건강과 자연환경을 심하게 훼손시키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높은, 우리와 비교적 가깝게 정서적 교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부터 구하고 싶은 마음이다. 돼지와 소와 닭도 제발 잡아먹을 때 잡아 먹더라도 쾌적하고 깨끗하고 좋은 환경에서 살다가 죽게 해 달라고 하고 싶다. 그것은 그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인간의 건강과 환경을 위한 것이기도 하기에...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것이 문화는 아니다. 과거 먹고 살기 힘든 시절, 내가 키우던 개라도 잡아 먹으며 연명해야 했던 혹은 건강을 유지해야 했던 때는 아니지 않은가? 영양이 넘쳐나고 먹을꺼리가 넘쳐나고 영양이 과다 섭취가 되는 이 시대에 왜 굳이 애써 개까지 먹어야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제 동물을 아끼고 생명을 존중하는 것은 인류가 보편적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이다.

스페인이 많은 불이익- 그 동안 상업적으로 얼마나 많은 이익을 누렸는가? - 을 무릅쓰고 투우를 금지하기로 결정한 것에 경의를 표한다. 우리에게도 개고기 식용 금지의 결단을 통해 한국이 동물보호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