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K1과 인간의 폭력성

사회선생 2010. 5. 17. 20:35

 예전부터 권투 경기를 볼 때마다 불편했다. 팬티 한 장 입혀 놓고 장갑 하나 씌워 놓은 채 상대방을 '기술적으로'  때려서 쓰러뜨리라고 하는 것은 피차에게 너무 잔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며 권투는 사양 스포츠가 되었고, 역시 경제 성장은 인권 의식 신장에도 기여하나보다 안도했는데, 그것은 오산이었다. 이제 주먹만으로는 '장사'가 되지 않자 그보다 더 자극적인 폭력으로 보는 이를 더 '짜릿하게' 해 주는 K1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뒷골목 조폭들의 싸움이 저럴까? 어떤 사람들은 밥을 먹으면서 땀냄새와 피냄새가 진동하는 그 무대(?)를 마치 콘서트장처럼 즐긴다는데, 나는 도저히 K1을 볼 수가 없다. 상대방을 마구 때려서 먼저 쓰러뜨리는 - 컴퓨터 게임도 아니고 실제 사람을 이용해서 이루어지는 경기라는 것이 기암할 노릇이다. - 가공할 폭력의 현장을 어떻게 사람들은 즐기는지 이해가 안 된다. 아무리 돈이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자본이 모이고,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세상이라지만 고대 로마 시대도 아닌 21세기에 주먹과 발을 이용해 상대방을 때려 눕히는 폭력을 스포츠라고 포장한 상품을 보는 것이나, 그것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참으로 불편하다. 그리고 묻고 싶다. 당신의 동생 혹은 당신의 부모가 저 링위에 있는 선수라고 해도 그렇게 때려 눕히라고 열광하며 볼 수 있냐고...... 로마 시대의 검투 경기를 2010년 현재 다시 잠실 운동장에서 재연한다고 해도 흥행에 크게 성공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때려 죽이는 것은 돼도 - 실제로 이종격투기 경기 중에 사망한 선수들은 있지 않은가?  -  무기로 죽이는 것은 안 되므로 검투 경기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위안을 삼아야 하나?

 인간의 문명은 수 천 년을 흘러 여기까지 왔지만, 여전히 인간의 야만성 혹은 비인간성은 그 때와 똑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사람들은 말한다. 그저 스포츠일 뿐이라고, 그들은 기꺼이 자신들이 선택한 스포츠 선수일 뿐이며, 폭력의 희생자들이 아니라고.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교묘히 스며들어 있는 정치적 폭력이라고... 하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의 속성은 같다. 단지 K1은 정치적 권력보다는 자본이 지배하는 폭력일 뿐이다. 자본에 의한 폭력은 허용되어 마땅하지만, 권력에 의한 폭력은 안 된다면 그것은 모순 아닌가?  나는 적어도 피를 흘리는 인간의 모습을, 육체적 고통을 겪는 인간의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다. 배고픔에 시달리는 인간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과 똑같다.

 과연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그들에게 존재한다면 그들이 K1`의 선수가 되어서 그 고통을 감내할까? 과거 미국의 흑인들이 돈과 명예를 거머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프로권투선수가 되는 길이었던 것과 무엇이 다른가? 가뜩이나 폭력에 무딘 사회에서 K1을 보는 것은 폭력에 대한 감각을 더 둔하게 만들어 우리 사회를 더 피폐하게 할 지도 모른다. 고대 로마의 검투 경기가 아무리 노예에게 자유민이 되는 기회를 주었다고 해도 인권을 말살하는, 용납될 수 없는 경기인 것처럼 K1은 아무리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돈이 되는 사업이라고 해도 21세기의 인권을 논하는 현대 사회에서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비인간적 게임이다. 그렇게 싸움을 하고 싶다면 사이버 대상과 하면 되지 않는가? 꼭 실제 사람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줘야 기쁜가?     

 

 인권이 실현되는 세상을 외치며 사회 운동을 하는 어떤 유명한 학생이 프로 권투 선수도 되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혹여 폭력성과 지배욕, 즉 권력욕이 과한 것이 아닐까 우려된다. 권투를 할 때는 맞거나 때리거나 둘 중 하나인데, 맞으면서도 때리면서도 행복해 질 수는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인권을 논하는 사람이.....혹시 그가 말하는 인권이 '원시적인' 정치가들처럼 그저 자신의 폭력적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한 사탕발림은 아닌지 문득 겁이 난다. 장래 희망은 정치가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