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반의 S는 1학년 때 자사고에서 전학을 온 학생이다. 사립초와 국제중을 거쳐 친구들 따라 가깝지도 않은 자사고에 입학했다. 입학해 보니 내신은 완전히 바닥이고, 자존감 같이 떨어지고, 집과 학교도 너무 멀고... 결국 결단을 내려 우리 학교로 전학 왔다. 지금 우리 반에서 성적으로는 가장 우수한 학생이고, 눈치도 빠르고 책임감도 강하고, 교우 관계도 좋고, 유머 감각도 있는 분위기 메이커이다.
논술로 서울의 상위권 대학을 가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고 충분히 그럴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학교 생활도 성실해서 웬만한 경시대회에는 열심히 참여하는데, 경시대회에서 참여자의 20% 가까이 상을 주다보니 거의 모든 상을 다 받는다. 오늘도 해석학탐구대회상, 수학연구대회상 등을 받았다. (이름도 어렵다. 애들도 상을 받으며 이게 무슨 상인지 모른다. 그래서 설명해 줘야 한다. 응, 이건 수학경시대회 상이고, 이건 수학시간에 발표 잘 해서 주는 상이야.) 무슨 상이든 그 상에서 누락되는 법이 없다. 그런데 얘가 상을 받으며 하는 말, "선생님, 저 상 받을 만큼 잘 하지 않았는데... 아, 진짜 상 받기도 민망해요." 이러면서 들어가 아이들의 웃음을 샀다. 우리 반에서 거의 모든 상은 두 아이가 독식한다. S와 J이다. 둘 다 학생부 종합 전형을 염두에 두고 매우 성실하게 학교 생활을 한다. 하긴 학생부 종합전형이 없어도 J는 성실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그냥 학교 생활 성실상이면 족한 것 같은데 이 성실상이 진화해서 분화됐다. 아주 이상하게...하긴 학교 생활 성실상으로 주자면 못 받을 학생보다 받을 학생들이 훨씬 많을거다.
학교에서 학생부 종합 전형을 겨냥해 매우 다양한 경시 대회를 만들고, 참여자에게는 웬만하면 상을 만들어서 준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다양한 경시 대회를 만들면 다양한 학생들이 상을 받을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거다. 소수 몇몇이 받는 상이 더 많아졌을 뿐이다. 상 몰아주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상이 상답지 않다. 거품이다. 100점 만점에 30점을 받았는데 상을 받는다. 그렇다보니 상을 받으면서 "아, 민망해."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다양한 활동이란 교과 지식의 주입이 아니라, 다양한 체험을 하게 해 주는 것이어야 하고, 그것으로 족하다. 학업 성취 정도를 묻는 활동이 아니라 학업 성취를 위한 과정과 참여에 의미를 둔 활동을 하라는 취지인거 같은데, 결국 소수에게 국한될 수밖에 없는 상을 자꾸 만들어 남발한다. 모르긴해도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이거라도 해서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우수한 학생을 명문대에 안착시켜야 하기 때문에 거의 비슷하게 운영되고 있을거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민망한 상이라면 그런 상은 문제가 있다. 민망하지 않은 상이라고 해도 소수만 계속 받게 되는 상이라면 이것 역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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