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무슨 부흥회도 아니고

사회선생 2017. 7. 15. 21:30

'수박 먹고 대학가자'라는 책이 있다. 입시 제도가 학교별로 워낙 다양해지는 데다가 소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수험생들의 욕구가 맞물려 탄생한 책으로 대한민국 모든 대학의 입시 요강들이 일목 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부피는 옛날의 전화번호부 만큼이나 두꺼운 데다가 가격도 5만원을 넘는 6개월용 - 수시 모집에 대해서만 나와 있으므로 - 책인데도 그 방대한 양과 체계적인 정리때문에 인기가 매우 많다.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절박한 심정때문이리라... 정말 그 책을 만들어 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쳐 주고 싶을 정도로 씨줄 날줄 정교하게, 보기 쉽게, 최대한 다양한 정보를 넣어 두었다. 저자의 노력이 엿보이는 책이다. 

그 책의 저자인 이대부고의 박건우 선생은 매해 책을 출판한 후 그 책을 가지고 교사, 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연수를 한다. 연수를 신청하면 그 고가의 책을 몇 권 무료로 배부해 주기 때문에, 책도 몇 권 얻을 겸 - 대부분은 필요한 만큼 더 사야 하지만 - 정보도 얻을 겸 우리 학교에서도 고3 담임들이 연수에 빠지지 않는다. (자원은 아니고 꼭 가야한다고 압력이 매우 세서 갈 수밖에 없는 연수이지만) 

비 오는 토요일 오전 11시. 경희대 강당은 무슨 난민들 피난처같은 분위기였다. 밖에 비가 오니까 강당 내부 여기저기 돗자리 깔아놓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차 마시고 밥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좌석 경합도 치열해서 올 해부터는 자리도 지정석인데, 그것도 땡마감이라 수업 시간까지 할애해 가며 간신히(?) 신청해서 얻은 자리이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별로 진학 지도에 대한 연수가 많지 않은 지방의 고교 담임들이 많이 신청해서 듣는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가보다. 그 많은 사람들이 토요일 오전부터 밥 먹고 간식 먹어가며 하루 종일 - 낮 12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 - 박건우 선생의 강의를 듣는다.

강의는 흡사 부흥회 분위기이다. 박건우선생의 말투 자체가 쇳소리 나는 하이톤의 부흥회 목사 스타일인데다가 계속 당신이 얼마나 공을 많이 들여서 만들었는지를 이야기하니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그리고 필 받아서 시간 안배를 제대로 하지 않고 진행되는 모습에서 더더욱... 그냥 아주 특이할 만한 점만 딱딱 얘기해 주고, 나머지는 책 자세히 읽어보시라고, 그리고 궁금한 점 있으면 카페에 올려주세요 뭐 이러면 좋겠는데 자꾸 대단한 발견을 했다고 하면서, 여러분들 절대로 놓치면 안 된다고 하는데 이거 뭐 할렐루야라도 외쳐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이다. 문득 우리네 대학 입시 문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서 한 편으로는 씁쓸했다.    

왜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입시 제도를 따로 공부해야 하는지 근본적으로 회의가 든다. 입시 제도가 공부할 만한 가치가 있는게 아니지 않는가? 그냥 학교 생활 성실히 하고, 학교 공부 잘 해서 대학에 가게 하면 되는거 아닌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다양한 선발 방식은 문제다. 대학의 선발의 자율성 보장? 다양한 학생들의 대학 입시 가능? 전자는 맞는 것 같은데 후자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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