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경제학은 나와 안 맞아

사회선생 2017. 7. 19. 12:29

경제 교과서를 쓰면서 나는 희소성의 원리를 극복하기 위하여 한정된 자원을 늘릴 수는 없으므로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줄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읽기 자료를 썼다가 철퇴(?)를 맞았다. 나의 경제적 수식으로는 욕망을 줄이는 것도 합리적 선택을 위한 '아주 좋은' 경제 문제 해결 방법 중 하나인 것 같은데, 함께 작업하는 경제학자들과 교사들은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런 발상 자체가 경제학의 기본 전제 조건을 무시하는 것이며, 철학 교육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경제 교육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기본 원칙을 깨면 경제 원리를 설명할 수 없단다. 경제학 교육이 아니라 경제 교육이라면 철학적 사유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지만 모두 다 그건 적절하지 않다니 내릴 수밖에...  

내가 경제 수업 하는 걸 재미없어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철학적 성찰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현실과 괴리된 기본 전제 조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라는 전제 하에, 완전 경쟁 시장이라는 전제 하에, 가격 외의 다른 변수는 완벽히 통제된다는 전제 하에... 이런 비현실적인 전제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이론들을 가르치다 보니 현실감이 없어서 재미가 없다. 

또 하나 철퇴 맞은 내용.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사회적으로 불합리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고 서술하면서 나는 공유지의 비극 사례를 읽기 자료로 썼다. 이건 그 동안 많이 다루었고, 일반화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별로 문제될 게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또 경제학자들은 이야기한다. 개인의 합리적 선택으로 끝나면 됐지 왜 사회적인 차원까지 확장시키냐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확장시켜서 보더라도 애덤스미스의 주장대로 써 주면 좋은데 굳이 역기능을 강조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난 경제 교육이 사회과 교육, 공동체 교육인데 왜 사회적 차원까지 확대해서 다루는 것이 안 된다는지 수용하기 힘들지만 다수가 원하므로 그것도 내렸다. 순기능보다 역기능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이유는 역기능은 우리가 문제 의식을 갖고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뭐 그런걸 모를 양반들은 아니기 때문에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었고... 그냥 경제 원리를 '객관적 서술'만 하면 되지 왜 자꾸 '정치적 평가'를 하려 하냐 이게 핵심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공유지의 비극을 대체할 사례를 하나 추천받았는데, 이걸 읽다가 쓴 웃음이 나왔다. 아, 진짜 경제학은 나랑 안 맞아. 맨큐의 경제학에 나온 사례인데 소가 코끼리와 달리 멸종되지 않는 이유는 사유화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코끼리를 사유화함으로써 코끼리 밀렵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까지 들어있었다. 아니 그 넓은 초원을 돌아다니며 살아야 할 코끼리를 자기네 앞 마당에 가둬두고 사유화시키는 것을 멸종을 막는 방법으로 가르치라니... 진짜 미치겠다.  

교육이란 공동체의 선을 생각하고, 인간의 도덕성을 신장시키는 것도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경제 교육이 인간의 이기성을 실현시키는 방법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냥 코끼리는 코끼리의 땅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우리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에 우리의 합리적 선택이라고 - 편익이 훨씬 큰 - 가르치고 싶은데... 아무래도 난 경제 교사가 될 자격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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