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경시대회 유감

사회선생 2017. 5. 24. 09:31

1교시가 영어경시대회였다. 감독을 들어갔는데, 정말 시험지 나눠주고 10분 만에 서 너 명 남고 다 잔다. 쌔근쌔근 자도 아주 제대로 잔다. 감독 교사 입장에서 학생들을 깨울 필요도 없다. 중간고사 영어 시험도 볼까 말까한 학생들이 태반인데, 굳이 경시대회까지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학생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럴 만한 실력도 안 되고, 그럴 만한 의지나 의사도 없다. 그런데 굳이 수업 시간까지 할애하며 전교생을 대상으로 영어경시대회, 수학경시대회 등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생부 종합 전형에 써 줄 꺼리들을 끊임없이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방과 후에 희망자들만 받아서 하면 될 것을 굳이 이렇게 수업 시간까지 할애해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이유는 희망자들이 별로 없고, 희망자들만 데리고 할 경우에 아무리 1등을 해도 빛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50명 중 1등보다는 누가 봐도 500명 중 1등이 대단해 보이지 않겠는가? 착시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대학 입시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보이려고... 이 때에 다수의 학생들은 들러리가 된다.

학생부 종합 전형의 취지에도 맞는것 같지 않다. 학생부 종합 전형은 수능만으로 알 수 없는 학생의 잠재력을 보겠다는 것인데, 사실 경시대회는 그냥 공부 잘 하는 학생들에게 훈장 하나 더 달아주는 행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경시대회가 어떻게 비교과 활동으로 분류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건 그냥 교과 활동의 연장선이다. 비교과 활동이라면 봉사활동으로 족하다.

그냥 수업 시간에 충실하게 공부하고, 교사들은 수업 운영 방식과 평가 방식을 바꿔 그에 대한 관찰과 기록, 평가를 하게 하며, 대학에서는 이를 참고하여 학생들을 선발하면 된다. 제발 원론적으로 접근했으면 좋겠다. 학생부 종합 전형의 취지에도 그게 맞는다. 화려하지만 착시 효과을 유발하는 생활기록부를 강요하는 것은 서로 피곤하고, 정상적인 교육 과정 운영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논문대회 심사를 위해 연구 계획서 몇 편을 훑어보면서도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 여 편 중에 선행 연구 찾아 카피하지 않고, 자기가 수행할 수 있는, 의미있는 계획서를 써 온 팀은 네 팀 정도이다. 이 역시 교과 수업 시간에 수행 평가로 소화 가능하다. 사회문화에서 연구 방법을 배운 후에 수행 평가로 하면 된다. 학교 수업도 빡빡하고 수업량도 만만치 않은 우리네 고등학교 현실에서 교과 외의 활동들과 수 많은 산출물을 요구하는 학생부 종합전형은 정말이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정말 오전 수업만 하고 오후에는 동아리 활동하고, 자기 관심 분야 찾아 논문 쓰고, 봉사 활동 다니게 하든지! 아니면 이것 저것 다 자르고 수업이 파행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정상적으로 운영되도록 그에 맞춰 학생부 종합전형을 운영하든지!  

"선생님, 경시대회도 자주 했으면 좋겠어요. 편히 잘 수 있잖아요." 이건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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