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학교에서 오래 근무하다가 여학교에 왔을 때에 나도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일단 두 가지 면에서 그랬다. 성별의 차이와 시대의 차이. 나는 그걸 파악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우리네 인권 의식이 변화되는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남학교에서 90년대에 했던 말이 2000년대 여학교에서는 인권 침해가 될 수 있었다.
남학교에서 나는 이런 식이었다. "야, 이 자식아, 너 요즘 왜 이렇게 살이 쪘어? 이 녀석 등짝이 운동장 됐어. 너 뚱뚱해지면 장가도 못 가. 운동 좀 해." 이런 나의 말에 "에이, 선생님, 걱정마세요. 뚱뚱해도 저 좋다는 여자 줄 섰어요." "선생님, 이거 다 근육이에요. 왜 그러세요?" "저 장가 안 가고 혼자 살거거든요." "저 먹는걸로라도 풀어야 돼요. 나중에 살 뺄거에요." 이런 식의 답이 왔다. 그럼 같이 웃고 그만이었다.
학생과 나 사이에 신뢰가 형성돼 있다고 믿었기에, 그리고 학생들의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감히' '뚱뚱'에 대한 언급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말을 현재의 여학교에서 해 본다고 가정해보자. 인권 침해 교사로 낙인 찍히기 딱 십상이다. 외모 비하에 막말에 이거 뭐 죄가 한 두 개가 아니다. 살찐 부위까지 언급하면 성희롱까지 들어갈 수 있다. 나 역시 초임 교사 시절에 했던 말들만 그대로 따 가지고 나열하면 영락없이 막말 인권 침해 교사 그 자체이다. 체벌까지 했으니 말해 무엇하랴?
나도 그랬지만, 간혹 교사들 중에 자신이 배운 방식대로, 자신이 초기에 행했던 방식대로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추행 발언을 하면서 농담이었다거나 학생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한 말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칭찬이었다고 하기도 한다. 남자들의 문화에서 성적인 농담을 주고 받는 것은 친밀함의 표현이었을게다. 그런데 학생들은 교사와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다. 시대도 변했다. 그걸 교사에게 맞추라고 할 수는 없다. 교사가 대상과 시대에 맞추어야 한다. 적어도 인권 문제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다. 사회과 교사라 나름대로 신경 쓴다고 쓰는데도 가끔 내가 한 말에 예상 외의 반응이 나오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공연히 재밌게 해 주겠다 친근감을 표현하겠다며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고 말 던지지 말자. 옛날엔 빵 터지는 유머였지만 오늘은 싸늘한 표정의 학생들을보게 될 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경찰서에 출두해야 할 일이 생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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