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시간에 말했다. 오늘 졸업 앨범 사진 촬영이 예고 대로 6교시에 있으니 화장을 하든 뭘 하든 점심 먹고 시작하라고... 그런데 6교시에 앨범 단체 사진을 찍으러 나갔더니 한 명이 없다. 직업반 학생 한 명이 그냥 간 거다. 원래 직업반 학생은 월요일만 오전 수업을 받는다. 직업반 학생들 때문에 애써 월요일로 촬영 날짜를 잡아 놓은건데 가 버린거다.
두 가지 면에서 화가 났다. 아침 조회 시간에 얘기했는데도 그냥 갔다는 사실과 단체 사진 찍는 줄 알면서 아무도 그 학생이 가는 걸 잡지 않았다는 것에... 일단 전자부터 확인해야 했다. 단체 사진을 찍은 후 교무실에 들어와서 빠진 학생에게 전화해 왜 갔냐고 물어봤다. 너무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 몰랐어요." "내가 조회 시간에 6교시에 사진 찍는다고 말 했잖아." "못 들었어요." 아, 정말 답이 없다. 모르긴해도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스파트폰 삼매경에 빠져있거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거나 둘 중 하나였을게다. 나는 분명히 그 녀석이 자리에 앉아있는 걸 확인했으니까.
종례 때 우리반 학생들에게 말했다. "P가 귀가하는데 왜 아무도 안 말렸니? 졸업 앨범 사진 찍는 날인줄 알잖아." "그냥 사정이 있어서 가는 줄 알았어요." "어떻게 누구 하나 붙잡고 물어보지도 않았어?" "안 친해요." "너희들은 친한 사람들과만 사회 생활하니? 그래도 주변에서 누군가 너 졸업 사진 찍는데 갈거야? 이 정도 물어봐 줄 수는 있잖아. 그런 말을 꼭 친해야만 하니? 학교에 자주 오는 친구가 아니니 좀 챙겨줄 수도 있잖아." 그제서야 우리반의 한없이 착한 반장이 "죄송해요. 거기까지 생각 못 했어요." 그런다.
사실 누구 잘못도 아니다. 난 전달했고, 걘 못 들었고, 우리반 애들은 굳이 애써 묻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남는 이 씁쓸함. 귀 쫑긋 세우고, 호기심에 가득 차서 무슨 말을 하나 관심있게까지는 아니라도 귀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열려 있으니 그냥 듣게 되기라고 하면 좋겠는데 그 조차도 안 되는 학생들이 교실에 있다. 생각보다 많다. 똑같은 얘길 해도 전달되지 않는 학생들... 대부분 학습 부진아가 되면서 동시에 학교 생활에서 이리 저리 치인다. 얘들은 언제부터 왜 귀가 닫혔을까? 최소한 듣고 싶은 말이라도 들어야 하는데, 그 조차도 안 들리는 경지(?)에 오른 학생들. 하나하나 불러다가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고...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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