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미성년자는 나이를 기준으로 정해 놓고 - 개인적으로 나타나는 능력 차이와 무관하게 - 권리와 의무의 한계를 지워 놓는다.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런데 노인의 경우에는 그런 법이 없다. 그렇다보니 보이스 피싱이나 의료기기나 건강보조식품으로 인해 피해를 많이 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노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은 없다.
노인이 되면 젊을 때와 달리 판단력이나 순발력이 현격히 떨어진다. 정서적으로도 감정의 기복이 훨씬 심하다. 정말 나는 더 이상 이성적일 수 없을 것 같은 우리 엄마가 TV나 신문에서 과대과장 광고를 하는 걸 보고 혹하는 것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아, 우리 엄마같은 사람마저 이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실제로 피해 당한 사례도 많다. 케이블TV에서 전화가 와서 무슨 서비스를 해 준다기에 무슨 말인지 잘 알아 듣지도 못했으면서 그 쪽에서 계속 좋은거다, 해 주겠다고 하니까 알겠다고 했는데 유료 서비스였다. 한참 뒤에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케이블사에 전화 걸어 따졌다. 휴대전화도 마찬가지다. 어느 달엔가 너무 요금이 많이 나왔다기에 보자고 했더니 무슨 무한통화 요금제인가에 가입이 되어 있는거다. 그래서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본인도 모른다고... 통신사에 전화해 봤더니 당사자가 동의해서 한 거라며 베짱이다. 노인분을 대상으로, 통화도 별로 하지 않는 분을 대상으로 이딴 짓 하지 말라고 하고 끊었다. 그게 전부다. 그 요금은 전부 물어야 했다. 노인이라고 해서 책임 능력이 없는게 아니니까. 노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악용한 기업 마케팅에 속은 것이건만 속았다고 입증하기가 너무 어렵다.
노인이 가해자가 된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얼마 전 사이다에 농약을 타서 이웃 지인들을 죽였다는 83세 할머니 이야기. 나는 그 할머니가 범인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그 할머니 역시 판단력이 흐려져서 그냥 골탕이나 먹이려고 했다가 자신이 예기치 못하게 사건이 커지자 어린 아이처럼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어릴 때에 내 동생이 소꼽놀이를 하다가 빨간 벽돌 가루를 내서 고춧가루라고 하며 놀았는데, 그 벽돌가루를 고추장 단지에 넣었다가 엄마에게 먼지 나도록 맞은 일이 있다. 엄마는 지금도 그 일을 후회한다. 그 나이에는 벽돌가루와 고춧가루를 구별하지 못하는 인지 능력을 가졌을 뿐인데 너무 가혹하게 굴었다고... 그런데 나이가 많이 들면 다시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인지 능력이 범죄로 연결될 수도 있고... 사이다에 골탕 먹이려고 나쁜 약을 좀 탔는데 죽을 줄은 몰랐다 뭐 이런 식.
노인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가 절실히 필요하다. 물론 같은 연령이라도 개인에 따라 신체적 나이나 정신적 나이는 많이 다르지만, 요즈음같이 보이스 피싱 범죄가 만연하고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통한 사기가 수월한 시대에 특히 노인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는 더더욱 필요하다. 사회적 약자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노인들의 정신 건강 관리를 정기적으로 해 주고, 노인들이 사기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아무튼 뭔가 제도적으로 노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재벌 2세들도 1세들의 정신이 혼미한 것을 악용하는 사태들이 발생하고 있지 않은가? 잘 사는 노인이든 그렇지 않은 노인이든 너무 많은 위험에, 피해자로 그리고 가해자로 노출되어 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닌 그들의 노화로 인해.
http://media.daum.net/society/all/newsview?newsid=20150821094508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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