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대화에서 혈액형만큼이나 비과학적인, 그런데도 너무 당연한 사실처럼 하는 말 중의 하나. '나는 이과 스타일이야. 그래서 썰을 못 풀어. 우린 정답만 적게 되어 있잖아.' '저 사람은 이과 스타일이야. 단순무식하잖아. 무슨 비판 의식도 없고 주변에 관심도 없어.' 그들의 주장대로 정리를 하자면, 문과 출신은 말이 많고 생각이 복잡하며 썰을 잘 풀고 말을 번지르르하게 하고 감성적이며 논쟁을 좋아한다? 이과 출신은 단순하고 분명한 것이 아니면 싫어하고 주변의 일에 별로 관심이 없으며 이성적이다? 뭐 나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는 없지만 대략 그런 이야기를 하며 두 그룹을 경계 짓는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별로 논쟁하고 싶지도 않고, 굳이 힘 주어 이야기할 만한 주제도 아니어서 '아, 네' 하고 말지만 속으로는 생각한다. '도대체 저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의 근원은 무엇일까?'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학벌, 성별, 지역으로 경계 짓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문이과로까지 경계 짓기를 하고 싶어할까? 사실도 아닌 편견을 가지고...'
일단 문이과 기질이라는 것 자체가 매우 모호하고 정말 그렇지도 않을 뿐더러, 학교에서 1학년 학생들을 보면 문이과 기질을 구분할 수 없다. 단지 수학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과학을 싫어하고 좋아하는 정도로는 구분할 수 있지만 그것을 앞서 말한 문이과 기질이라고 할 수는 절대로! 없다. 그리고 엄밀하게 2, 3학년 때에도 혹자들이 말하는 문이과 기질을 구분하기 힘들다. 학습력이 뛰어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은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 학습력이 좋은 학생들이 이과로 많이 가고 '자유로운 영혼'의 소녀들이 문과에 더 많이 포진되다보니 수업 분위기가 문과보다는 이과가 좋고,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의 전형적인 특성들 - 자기만의 세계가 뚜렷하고 주변에 별로 흔들리지 않으며 목표 지향적인 - 이 이과반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즉 문이과의 기질이 아니라 학습력 혹은 학습에 대한 태도가 변수가 되어 나타나는 차이인데도 그걸 문이과로 구분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 같다.
사실 학문의 세계는 궁극으로 들어가면 문이과를 구분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수학이나 과학도 궁극은 결국 기호 철학이나 논리 철학, 혹은 현상에 철학적 상상을 더해 체계화, 구조화시킨 것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서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것이 학문이고, 그것은 문이과를 초월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아, 정확하게 문이과를 구분하는 경계가 얼마나 불합리한지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그렇다면 나도 이과 기질을 가졌다는 것인가? 사람들은 나보고 이과 기질을 가진 사람처럼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건 이과 기질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무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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