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미국에서 살던 지인이 한국에 나와서 친구들과 골프 치러 갔더니 캐디가 자꾸 사장님이라고 부르더란다. 가뜩이나 캐디 문화도 어색해 죽겠는데, 호칭도 거슬려서 "저 사장 아닌데요. 그냥 미스터 김이라고 부르세요." 그랬더니 같이 간 한국의 동료들이 "한국에서는 그냥 고객은 사장님 아니면 사모님이야. 미스터 김이라니 그건 하대하는 거라구.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 미스터라니... 그건 안 되지. "
우리네 정치 문화는 평등을 지향하는데 호칭 문화는 위계와 친밀감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전통문화와 현대문화 간의 괴리가 나타난다. 적절한 호칭 문화의 부재라고나 할까?
그렇다보니 직업이나 직함이 호칭이 된다. 예를 들어 부장이면 이는 직함이고, 이 직함은 그 조직의 구성원들에게는 적절한 호칭일 수 있지만 사실 조직 밖의 사람들에게는 그가 부장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마땅한 호칭이 없으니 명함에 적힌 직함이 호칭이 된다. 나에게는 부장이 아니지만 그를 부장님으로 불러야 하는... 직업이나 직함이 마땅치 않은 경우에는 정말 뭐라고 호칭을 해야 할 지 난감하다. 그런데 직업도 직업 나름이라 기자에게는 '기자님' 하면 되지만 농부에게 '농부님' 이러는건 어색하다. 왜냐하면 직업이나 직함도 사실은 사회적 선호와 위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토당토않게 뭉뚱그려 사용되는 호칭이 '사장님, 사모님'이다. 사장님이나 사모님은 위계가 내포된 관계이지만 상대방에 대해서 모를 때에 주로 사용된다.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불합리하다. 예를 들어 내가 주유소에서 차에 기름을 넣는다고 주유소 점원보다 높은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왜 사모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려야 하는가? 남자는 또 어떤가? 사장님이란다. 그냥 '고객님' 정도로 정리해 주면 좋겠다.
언니나 이모는 또 어떤가? 웬만한 매장이나 식당의 점원에게 쓰는 호칭은 언니나 이모이다. 언니나 이모는 친밀감을 갖게 해 주는 말이라서 우리 사회의 온정주의 문화때문에 대중화된 것 같은데, 과연 언니나 이모로 부른다고 정말 친밀감을 느끼는지 궁금하다. 또한 언니나 이모로 불리워지는 지는 당사자들은 만족스러운지도 궁금하다. 일터에서 비공식적인 호칭으로 불리워지는 것이 달갑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뭐라고 불러야 할까? 상호 관계는 평등하면서 뭔가 격식에 맞는 것 같은 호칭을 곰곰 생각해 보는데... 없다. 아니 나도 모르겠다. (나는 언니나 이모가 없기 때문인지 처음보는 사람에게 그런 호칭이 튀어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진짜 신기하다.)
p.s. 그런데 재미있게도 오빠라는 말은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여직원이 직장에서 가까운 여자 선배에게는 언니라고 불러도 남자 선배에게 오빠라고 하지는 않는다. 누군가 남자 선배들에게 오빠라고 하면 듣는 오빠는 좋아하겠지만 주변 여직원들에게는 공공의 적이 되지 않을까? 이건 점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오빠는 이성 간의 경계를 뚜렷히 구분하며 은근히 성적인 느낌을 내포하고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아, 호칭의 혼란스러움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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