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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기를 이용하면 수학을 좋아할까?

사회선생 2015. 3. 20. 23:35

여학교, 인문계 고등학교, 그 중에서도 문과반 학생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수학 포기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다. 수학 시간은 그야말로 학교 붕괴 현장을 생생히 보여준다. 한 학급 40명 중 수업을 '제대로' 듣는 학생은 서너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학생들은 수학 교사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느냐를 파악한 후 자신의 행동 방식을 결정한다. 교사가 무섭거나 자는 것을 가만히 두지 않으면 멍청히 앉아있거나, 눈치껏 다른 공부를 한다. 하지만 교사가 '착하면' 그냥 안심하고 푹 잔다. 

나도 수학 전문가는 아니어서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의 수학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많은 사람들이 수학이 너무 어렵다고 말을 하니 그런가보다 한다. 어려운 것에 도전하고 해결해 나가는 것도 의미있는 공부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다수의 학생들에게 강요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그렇다고 앞으로는 구구단을 외울 필요도 없고, 간단한 수식도 계산기를 이용해서 계산하도록 한다는 말을 듣자니 걱정스럽다.  

수학은 단계형 교육과정이다. 일단 해당 학년에서 이수해야 할 성취 기준을 달성하지 못하면 다음 학년에서 학습을 따라갈 수가 없다. 한 번 놓치면 영원히 부진아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과목이다. 그래서 수학은 초등학교 5학년 때에 그 성적이 결정된다든가? 아무튼 확 어려워지는 단계가 있는데, 그 단계를 놓치면 끝장이라는 것이다. 학생들이 수학을 기피하는 현상을 막으려면 수학이야말로 수준별 선택 과목으로 돌려야 한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도 중학교 수준, 초등학교 수준의 수학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제대로 된 수준별 수업이 아닌가? 좋은 대학에 가려는 학생들에게는 고급 수학을 배우게 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각자 자신의 수준에 맞는 수학 수업을 반드시 선택해서 듣게 하면 되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계산기 사용하게 해 주고 구구단 외우게 하지 않는다고 수학을 좋아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이러다가는 마트에 쇼핑하러 가서 이만원짜리 물건을 30% 세일한다고 해도 가격을 몰라 땀 삐질삐질 흘리며 계산기 두드리고 있는 풍경을 보게 될 지 모르겠다.  무슨 상관이냐고?

인도는 구구단을 19단까지 외운다고 한다. 물론 인도는 못 사는 나라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자니 미국에서 잘 나가는 IT 업체 직원들은 다수가 인도인과 중국인이란다. 인도가 IT 강국이며,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구구단 19단의 힘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IT 강국을 표방한다. 그런데 9단까지밖에 안 외우는 구구단도 이제는 계산기로 활용하라고? 이것이야말로 하향평준화가 아니고 무엇인지... 그런 인기영합성 정치 할 생각 말고, 수학 교육 과정과 수학 교과서나 제대로, 의미있고 재미있게 만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