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학교에서는 교실 앞문에 담임들이 학급 운영 방침과 자신의 사진, 휴대 전화 번호 등을 적어서 붙여 놓도록 하였다. 이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컸다. 교사가 아무리 학생과 학부모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일을 한다지만, 이것이 과연 학생들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자신의 사진 대신 다른 사진들을 넣고, 휴대 전화 번호가 아닌 교무실 전화 번호를 넣어 붙여 놓았고 그런 채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런 정보가 누구에게 왜 필요했을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관리자들이 돌아다니다가 교실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면 누구 반인지 빨리 알아 차리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그런데 학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아니 학교는 그래도 낫다. 어차피 폐쇄된 공간에서 학생과 교사들만 그 정보를 보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면 언제부터인가 버스 안에 운전 기사의 사진과 휴대전화번호를 적어 놓은 것을 본다. 왜 기사의 사진과 휴대전화번호까지 적어 놓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만일 내가 버스를 타고 가다가 불편함을 느꼈다면, 아니 기사때문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하더라도 직접 기사에게 전화를 해야 하는가? 내가 기사에게 전화를 할 일이 무엇인가? 승객들을 위한 서비스 차원이었다면, 버스의 번호와 교통 불편 신고를 할 수 있는 회사의 전화번호나 이메일 혹은 홈페이지의 게시판 주소를 알려주면 된다. 나는 그런 실명제가 승객들을 위한 서비스가 아니라 기사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처럼 느껴져서 불편하다. 왜 기사들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사진과 휴대전화번호같은 개인정보까지 공개해야 하는가? 무슨 영업직도 아니고, 기사 개인을 반드시 식별해야 하는 업무도 아니지 않은가? 이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말 승객들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기사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 아닌가? 오늘도 버스에서 사진과 전화번호를 목격하며 씁쓸함을 느끼고 있는데, 어느 공사 현장에서도 공사감독과 시공자 두 사람의 사진과 이름, 휴대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이것이 정부의 정책인지, 회사의 경영 방침인지 모르겠으나 무엇이라고 해도 이는 도를 넘은 서비스 제공이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영업직원이나 식당 주방장이 자신의 이름과 사진을 내걸고 장사하는 것과는 다르다.
실명제는 책임을 강화하기 위하여 그리고 업무 처리 담당자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알게 하기 위하여 필요하다. 관청이나 기업에서 업무 처리 담당자가 누구인지 알 필요가 있기에 그들이 명찰을 달고 있는 것은 필요한, 괜찮은 서비스이다. 그러나 많은 을들의 실명과 개인정보 공개는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에 별로 기여하지 않으며 오히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 책임을 기업이 피하면서 개인에게 전가시키려고 하는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실명제를 하고 싶다면 차라리 고용인의 사진과 실명을 공개하고 회사 전화 번호를 기재하길 바란다. "제가 이 회사의 총책임자입니다. 저희 회사의 서비스에서 문제를 발견하신다면 저에게 직접 연락주십시오." 이런 실명제는 한번도 못 봤다. 왜 그럴까? (내가 너무 삐딱하고 정치적으로 보는 것인가? 나의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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