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수시에 실패한 이유는

사회선생 2014. 12. 19. 09:23

 정시 면담을 하면서 새삼 또 느끼게 된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강북의 많은 일반계 인문고들이 비슷하겠지만, 학생들의 내신 대비 수능 성적이 좋지 않다. 최악의 경우 내신 전교 1등인데 2등급 3개라는 수능 최저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서울대와 고대의 학교장 추천을 받지 못하거나 받았다가도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사실 전교 1등 수준의 학력인데 2등급 세 개가 안 나온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우리반의 B양은 내신 2.2 등급, 수능도 평균 2등급이다. 3등급이나 4등급도 한 개 이상 나온다. 하지만 논술도 꾸준히 연습을 했기에, 수시 지원 기회 6개 중 절반은 논술 전형으로 이화여대, 숙명여대까지 넣고 나머지 네 개는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넣자고 했건만 눈물을 뚝뚝 흘린다. "제가 그런 수준의 대학에 가려고 공부한 게 아니에요. 제 자존심에 그런 대학은 못 가겠어요." 그러더니 연대, 고대, 성균관대, 서강대, 중앙대, 이화여대에 지원했다. 물론 다 떨어졌다. (이화여대는 담임이 면담해 준 성의(?)를 생각해서 넣어주었단다.) 현재 받아온 수능 성적으로는 숙대를 간신히 갈 수 있을까 말까이다. 답답하다.

 또 한 명의 학생 C양은 내신 3.08 등급이고 누가 봐도 수능형이 아니다. 딱 한 번 22322 등급이 나온 적이 있지만, 대부분은 4등급 수준이다. 그래서 수시 면담 때에 말했다. "넌 꼭 수시에서 가야 돼. 논술을 조금 했으니 논술 전형으로 서울의 중하위권 여대 모두 넣고, 연대 원주 캠퍼스까지 생각하자." 평소에 얌전하고 순종적인 이미지의 C는 자신을 과소 평가하는 담임을 마음 속으로 원망하며 자기 마음대로 지원을 했다. 동국대, 중앙대, 경희대는 논술, 서울여대와 동덕여대는 교과 우수자 전형으로... "네 성적이 교과 우수자 전형으로는 안 돼. 서울여대와 동덕여대 논술로 넣고, 동국대, 중앙대, 경희대는 빼자. 넌 꼭 수시로 가야 돼." "이미 그렇게 접수했어요." 물론 C도 다 떨어졌고, 수능은 54334 등급을 받아왔다. 충청도도 골라 가기는 힘든 점수이다.

 재수를 하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재수는 국영수 기초가 튼튼한 학생이 아니면 그리고 기질상 목표 의식이 뚜렷하고 자기 절제와 통제력이 뛰어난 학생이 아니면 권할 수가 없다. 학교에서 매일 교사들이 잔소리하고 통제하며 공부를 시켜도 공부하기가 그렇게 힘든데, 혼자서 스스로?

  B양과 C양이 정시 면담을 하겠다고 왔다. B양은 예상대로 반수를 할 예정이므로 아무 데나 일단 붙을 곳으로 가겠다고 했고, C양은 수도권도 갈 수 없는 현실을 파악하더니 재수를 하겠단다. '그래, 열심히 해서 목적한 바를 달성하기를 바란다'고 말하면서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기질이나 성격, 태도나 가치를 바꾸는 것은 성적을 올리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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