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교재 집필 건으로 여러 학교 교사들과 모이게 됐다. 거의 서울 시내에서 대학 입시를 목적(?)으로 한 학교들은 유형별로 모두 있는 것 같다. 어제가 수시 모집 합격자 발표가 끝나는 날이라 자연스럽게 다들 몇 명이나 대학에 갔는지, 근무하는 학교의 분위기는 어떤지 등을 이야기하게 됐다.
K교사 : 선생님 반에는 몇 명이나 대학에 갔어요?
S교사 : 우리반은 지금 7명 정도가 in Seoul이에요.
K교사 : 에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떡해요? SKY 와 서성한중 정도를 말씀하셔야지. (서강대, 성대, 한대, 중대를 의미한다)
S교사 : 그렇게 얘기하면 우리 반은 한 명도 없어요.
J교사 : 선생님네 학교는 모두 1등급 받는 애들이 몇 명이나 나와요?
S교사 : 문과 전체에서 한 명 나올까 말까...
Y교사 : 우리 반은 30명 중에서 2등급이 몇 개 안 되는데... 모두 1등급이에요.
그런 대화를 듣고 있으면 그들이 대충 어느 지역에 위치한 고등학교인지, 특목고인지 일반고인지 등을 알 수 있다. K는 강남의 요지(?)에 있는 인문계고, S는 강북의 한지(?)에 있는 인문계고에서 근무한다. Y는 전국단위로 중학교 성적 상위3% 이상만 모여있다는 자사고이다.
그러다가 모인 교사 중 한 명의 자녀가 서울대를 아쉽게 떨어지고, KAIST에 합격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됐다. 난 문득 그 교사의 자녀는 어떤 고등학교를 나왔을 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일반 인문계고에 다니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뒤에 단서가 붙었다. "일산 지역은 비평준화야."
현재 우리나라의 고등학교는 완전히 대학 입시로 서열화되어 있다. 자사고, 자율고, 특목고, 일반고 강남이 거의 독식하고 있고, 강북에 위치한 일반 인문계고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강북의 H고에서는 최근 '특별한 학교 정책'을 시행하며 서울대 입학생을 5명으로 늘리는 쾌거(?)를 이루었다고 하기에 도대체 무슨 정책을 썼냐고 물었다. 정책인즉, 전교 20등까지를 내신 성적 높이기 위해 학교에서 밤 11시 30분까지 내신 공부만 시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일이 기말고사 음악과 미술 시험이면 전날 자습실에 모아 놓고 미술과 음악 공부만 시키는 식이다. 감독이 철저하게 관리하면서... 그러자 강남과 자율고 교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탄식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란다. 학부모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고... 하지만 H 고에서는 내신 관리 정책을 편 것이다. 송파의 요지(?)에 위치한 B고 교사가 자신의 학교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한다. 특별한 그룹의 학생들을 모아 놓고 특별 지도한다는 건 학부모의 항의도 항의지만, 그 학교의 교장은 서울대 입학생만 자랑스러운 학생인 것처럼 분위기 조장해서는 안 된다고 그 전에 해 왔던 서울대 합격생 플랭카드 붙이던 것도 없앴단다. 참고로 올 해에는 재학생만 7명이 서울대 수시에 합격했고, 정시에서도 그 정도는 합격생이 나온다고 한다.
정말 무엇이 옳은지 혼란스럽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지역에 위치한 학교에서 그나마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대학에 입학시켜 주기 위하여 학교에서 밤 11시까지 잡아 두고, 학생들은 원하지도 않는 내신 관리(?)라는 비교육적 정책이라도 우격다짐으로 시행하는 것이 옳은지, 명문대를 나와도 취업하기 힘든 요즈음 같은 시대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도록 해 주며, 학생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학교 생활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옳은지... 전자는 옳지 않은 것 같고, 후자는 실현 불가능할 것 같고... 정말 혼란스럽다. 경쟁을 시키려면 공평하게 구획 정리라도 해 주고 시키든가, 지금같은 고등학교 체제에서의 경쟁은 패배의식과 자괴감만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