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원의 수능 검토 과정은 생각보다 심도 있다. 10 여 일 동안 편집증에 걸린 사람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러 각도에서 주도 면밀하게 문제를 살핀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류가 발생하는 것은 경험적으로 유추해 보건대, 지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있게 그냥 가자고 주장하는 출제진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만일 검토진에서 오류를 지적하지 못했다면 이는 검토진의 전문성에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나는 후자보다는 전자였을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둔다.
수능의 출제진은 대부분 교수와 교재 출판 경험이 없는 교사들로 구성된다. 교수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깊이 있는 이론적 배경을 가지고 문제를 출제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해당 과목의 교과 교육 과정을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데에는 사실 한계가 있고, 교사는 교재 출판 경험이 없기 때문에 상업성으로부터는 자유롭지만 출제 경험은 별로 없다는 한계가 있다. 검토의 경우에는 비교적 출제 경험이 많은 교사들이 들어간다. 그런데 사회의 경우만 보더라도 선택 과목이 세 과목에서 두 과목으로 바뀐 이후부터는 검토의 양의 많아져서 좀 힘들어졌다. 예전같으면 법과 사회와 정치가 한팀, 사회문화와 경제가 한 팀 이렇게 두 팀이 꾸려졌는데, 요즈음은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법과 정치, 경제, 사회문화를 한 팀이 검토한다. 사실 이것도 조금 위험하다. 모든 과목을 가르칠 수 있는 것과 모든 과목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통달하고 있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무오류로 잡아내려면 통달하고 있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이번 수능에는 영어과와 생물과에서 오류가 나왔나보다. 영어과의 %와 % 포인트의 개념은 사실 사회탐구에서는 중시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상호 간에 조금만 검토를 했어도 충분히 잡아낼 수 있는 것이었고, 생물과는 모르긴해도 검토 과정에서 나왔을 법한 내용이다. 고집 센 출제자가 있었거나, 시간이 부족했거나, 전문성이 없었거나... 오류가 나지 않게 하려면 일단 미리 문항 출제를 한 후에 사전 검토를 어느 정도 받고 다듬어서 들어가야 하며 - 보안 문제때문에 대부분 들어가서 출제한다. - 영어나 국어의 비문학의 내용은 관련 영역의 조언을 반드시 받아야 하고, 어떤 경우에도 검토 의견이 나오면 일단 검토 의견이 옳다는 태도로 문제에 접근해 다시 살펴 봐야 한다.
얼마 전 수능 교재에서 내 문항에도 오류가 나왔다. 분명히 문제에도 해설에도 '중층'이라고 썼는데, 어느 사이에 '계층'으로 둔갑해서 답이 없는 문제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해설에는 중층으로 제대로 해설이 되어 있는데, 문제의 답지에는 계층이다. ebs는 수능 연계 교재이기 때문에 검토를 5번이나 했고, 정말 꼼꼼하게 본다고 보았지만, 출판 이후 이런 오류가 발견된 것이다. 식겁했다. 이렇게 저렇게 수정하는 과정에서 뭔가 착오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이 내 책임이다. 어쨌든 내가 끝까지 꼼꼼히 살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니... 수능이 아닌 것을 감사해야겠다. 만일 수능에서 내가 검토했는데, 혹은 내가 출제했는데 저 지경이면... 제대로 잠 자기 힘들다. 모르긴해도 지금 생물과 영어과는 죽을 맛일 것이다. 수능 교재에서 오류 난 것도 얼마나 오랫 동안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수능이라면... 아,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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