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의 인간성을 알려면 .이해 관계가 충돌되었을 때, 혹은 손해를 입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이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물론 나 포함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해보는 것을 싫어하고 원치 않는다. 하지만 살다보면 타인의 실수로 내가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다.
며칠 전 오전에 3학년 기말고사 감독을 한 후, 4교시에 또 모의고사 감독이 있는 줄 모르고 종례를 한 후 교실에서 학생들과 면담을 하고 있었다. 전문대 수시 2차 모집 마감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무실에 내려왔는데 비슷한 때에 4교시가 끝나는 종이 쳤다. 그 때 멀리서 신경질적으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참고로 나를 부르는 사람은 후배이다.)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랬더니 내가 4교시 감독인데 들어오지 않는 바람에 한 시간 - 정확하게 45분 - 을 더 감독했다며 내게 신경질을 내더니 사람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교무실에서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그녀가 자리를 뜨자,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내 주변으로 몰려들어 한 마디씩 한다. '왜 그랬어? 어제 몸이 안 좋다더니 어디 안 좋았어?' (전날 장염으로 고생 좀 했다.) "아니요, 완전히 제 실수에요. 제가 시간표를 꼼꼼히 보지 못했어요." 원래 심하게 아프면 조용히 사라지지 소문내는 걸 별로 좋아하는 성격이 아닌지라 그렇게 말하고, 고사 시간표 담당 교사에게 자초지종 말한 후 시간표 조정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신경질 그녀에게 정중하게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의 쪽지를 보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으니 제가 선생님의 화를 받아 마땅하겠지요. 선생님이 손해보는 일 없도록 내일 선생님 감독은 제가 대신 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문제 해결 방식이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문제 해결 방식은 다르겠지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봤다. 내가 그녀 대신에 감독을 더 하게 됐다면... 적어도 나는 그녀처럼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도 그런 경험이 없지 않다. 어느 선배 교사가 점심 먹으러 가는 바람에 거의 끝날 무렵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나 역시 짜증났지만 선배에게 신경질을 내며 소리지르지는 못했다. 설사 선배 교사가 의도적으로 들어오지 않은 것이라고 해도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후배였다고 해도 그렇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당사자에게 직접 말은 했을 것이다. (멀리서 신경질적으로 소리지르지 않고 조용히)
그 사건을 겪으며 주변인들을 하나 하나 적용해봤다. 이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저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그러다가 가까운 후배들 몇에게 물어봤다. '당신이라면 내가 늦었을 때 어떻게 하겠어?' 다행히 그들은 대부분 그녀같지는 않다. 내가 당한 일을 '구체적으로' 한 후배에게 이야기하자, 그 후배 왈, "에이, 완전히 까였는데~! 원래 자기가 손해보는 일에 민감한 사람들 있잖아요. 그냥 냅둬요. 자기는 실수 안 할 거 같겠죠." 그래, 조금 위안이 된다. 우리는 그렇게 살지 말자고 하자 그 후배가 말한다.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는 제가 준 선물을 제 앞에서 갖다 버리는 모욕도 당했는데요 뭐. 그렇게 까인건 까인 것도 아니에요. 그래도 약장사 얘기보단 낫잖아요. 아니 사기꾼 얘기보다 나은가? " "앞에서 그 정도면 뒤에서는 막말이 난무하겠지? 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는 살지 말자."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말과 행동으로 인격이 보인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면 그런 줄도 모른채 친하게 지낼 뻔 하지 않았나? 그냥 아웃 오브 안중. 더 이상의 관계는 사절! 로 단락지었다. 하지만 그녀가 실수를 해서 내가 손해보는 일이 생기더라도 그녀처럼은 하지 말자. 나잇살 먹어서 그러는 건 너무 추하지 않은가?
항상 느끼는 사실이지만, 교사의 인격이 학생보다 훌륭한 건 아니다. 문득 지적으로도 학생들이 교사들보다 뛰어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물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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