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가지고 다니던 노트북이 급브레이크의 반동으로 - 높지도 않은 - 자동차 의자 위에서 떨어진 이후 맛이 갔다. 액정이 나갔는지 컴퓨터를 켜도 불빛만 들어온 것이 감지될 뿐 어떤 아이콘도 보여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AS 센터에 갔다. (나는 가전제품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가능하면 대기업 제품을 산다. AS 받기 수월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그런데 수리 기사 왈, "이거 너무 오래된 거라 액정을 구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고작 4년 밖에 지나지 않은 것이 오래됐다니... 소비자인 나는 오래됐다는 것도 느끼지 못했을 뿐더러 자동차 의자 아래로 떨어지기 전까지는 아무런 불편없이 사용해 왔는데, 오래되어서 부품을 구할 수 없단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이 더 기가 막히다. "저희가 법적으로 4년까지는 부품 등을 구비해 놓고 수리해 드려야 하지만, 4년이 넘은 것은 부품이 없으면 저희도 어쩔 수 없어요. 지금 부품이 남은게 있나 검색을 해 봤는데... 수리가 불가능하겠는데요."
4년이라니, 도대체 누구를 위한 4년이라는 것인가? 어떻게 21세기에 전자 제품의 사용 주기를 20세기 만도 못한 4년으로 만들어 놓고, 4년 지나면 버리고 새 것을 사라는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업의 횡포라고 밖에 여겨지질 않는다. 내가 왜 기업의 상품 주기에 맞춰서 소비를 해야 하는가? 상품에 인간을 맞추라는 것인가?
문득 우리가 말하는 경제 성장이 고작 이런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며 성장의 공허함이 느껴진다. 끊임없이 '멀쩡한' 인간을 자극해 필요 이상의 물질적 욕구를 만들어내고, 소비를 진작시키며, 기업의 생산에 맞추어서 소비를 강요하는 사회에 우리는 너무 길들여져 있고, 그런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가 곧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과잉생산은 자원의 낭비요, 과잉소비는 쓰레기의 양산이다.
이제 성장의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 기업이 아니라 인간 중심으로. 과잉생산이 아니라 '착한 생산'으로...그리고 경제공동체의 범주를 지구생태계로 확대시켜야 한다. (누군가 내게 말할 것 같다. 그래봤자 소용없어. 결국 돈이 세상을 지배한 지 오래되어거든. 그리고 너처럼 소비 생활하다가는 경기가 나빠져서 큰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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