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에르메스와 세피아

사회선생 2014. 10. 25. 20:44

 지인이 에르메스에 다닌다. 그녀는 종종 푸념을 한다. 관리해야 하는 에르메스 가방들은 종종 자신의 연봉보다 훨씬 비싸서 '모시면서' 살아야 하는 탓이다. 1억원짜리 가방이 들어왔는데, 공연히 만지다가 흠집이라도 날까봐 정말 건드리고 싶지조차 않았단다. 얼마 전 어느 매장을 오픈하기로 한 전날 VVIP들을 초대하였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수천만원짜리 가방이 팔리고 - 자신들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 오픈한 날에는 바로 그 가방의 예약이 들어와서 업체에서는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부러움은 전혀 없지만 - 어차피 나는 수천만원짜리 가방의 가치를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나같은 사람이 들고 다녀봐야 다 짝퉁으로 볼 뿐이다. - 얼마나 돈이 많으면 수천만원짜리 가방을 살 수 있을까 그런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아마 자신의 돈이 얼마인지 모를 정도로 많고, 돈이 화수분처럼 지속적으로 알을 낳아주고 있을 경우에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나 현재 그렇다고 하더라도 맨땅에서 시작한 자수성가 1세대는 그런 소비 행태를 보이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힘들게' 돈을 벌면 그 돈을 그렇게 소비하기 힘들다. 그런데 쉽게 돈을 벌면 가능하다. 재벌 1세대보다 2세대의 소비 행태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어쨌든 그런 이야기를 지인들과 나누었는데 오늘 뉴스를 보니 저런 사람들이 수천만원짜리 가방의 소비자 중 하나겠구나 싶다. 

 전관예우가 법조계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관세청에도 있었단다. 관세청 고위직 퇴직자가 대형로펌과 대기업에서 세금에 관한 조언을 해주고 받는 수익이 거의 연봉으로 8억 정도였단다. 비공식적인 상담료까지 따지면 10억이 넘을 것이라니 연금도 많이 받을텐데, 그 외의 수익으로 해마다 10억이라... 이렇게 국세청 공무원이 퇴임 후에 대기업의 탈세 - 그들이야 절세라고 말하겠지만 - 를 도와주며 받는 수익이라니... 아는 만큼 도둑질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르며 참 씁쓸하다. 퇴임 후에도 부정한 커넥션이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밝혀진 과정도 코메디다. 퇴직자에게 소득세가 청구되자 그는 과다 청구라며 소송을 했고, 그 소송 과정에서 전관예우의 과정이 적나라하게 하게 밝혀졌단다. 결국 소송에서도 졌고.

 문득 수천만원짜리 가방은 그런 사람들이 주 소비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끼리의 뇌물용, 그들의 과시용, 그들 자녀들의 소비용. 전화로 국세청에 전화 한 번만 해 주세요 청탁받고 수천만원 받는다면 수천만원이 돈처럼 보이겠는가?  아무리 봐도 그런 조언을 수 천만원 받아도 마땅한 노동의 가치이며 그에 따른 대가라로 인정하고 싶지가 않다. 가방과 같은 소비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려 고소득 직종의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한 상품을 만들어 파는 산업도 필요하다. 실제로 세계 최고의 장인들이 한땀 한땀 꿰며 소량 생산하고, 세계 최고의 가죽을 구매하기 위해 담당자들은 늘 현찰들고 다니며 세계 시장을 누빈다고 한다. 그들만의 세상이 있고, 그들만의 세상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없다. 솔직히 말하면 관심이 없다. 하지만 선량하게 세금 다 내는 사람으로서 세피아, 관피아에게는 매우 열받는다. 선량하게 세금 내는 시민으로서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우리 사회는 언제나 세금 제대로 내는 사람이 바보가 아닌 사회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