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이대 북문에서 내려오는 길

사회선생 2014. 10. 16. 11:00

사람은 거의 다니지 않지만, 이대 북문에서 캠퍼스로 내려오는 길을 좋아했다. 왼쪽의 테니스장을 지나면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우거진 숲이었고, 오른쪽도 나무가 우거진 언덕 아래로 신촌 일대가 보였다. 서울 시내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운치 있었고, 가끔 밤에는 삵이라도 튀어 나오지 않을까 두려워할 정도의 '훌륭한 숲길' 이었다. 

 그런데 지난 여름 어느날, 아현동 일대를 내려다 볼 수 없도록 펜스가 높이 쳐지기 시작하더니 무슨 공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 높이 쳐진 인공적 펜스만큼이나 마음이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우거진 숲이 휑해지는 것이 그 펜스 사이 사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축구장 4개 면적에 해당하는 북아현숲 3만149㎡ 에 살던 수 십 년 이상 된 수목 1200여 그루가 사라졌고, 숲에 살던 약 200여종의 동식물 등이 터전을 잃었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고양이는 커녕 다람쥐 한 마리 볼 수 없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

 기숙사를 짓기 위한 것이라고 이대 측에서는 밝히고 있지만, 돈이 되는 일을 위해서라면 그 만큼의 숲도 아무 양심의 가책 없이 베어버릴 수 있는 지식인들의 변명처럼 느껴져서 더 싫어진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서 기숙사를 짓는다? 10%도 안 되는 기숙사 수용률을 높이기 위해서 그랬다? 그런 이유들이 서울의 허파와 같았던 숲을 파괴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일인가?  그 땅이 이대의 사유지라고 해도, 그리고 법적으로 건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해도 '도덕적으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예상컨대 절대로! 아무런 문제가 있다! 왜 신축 공사 하기 직전에 늘 받았던 비오톱1등급이 2등급으로 하향 조정되었는가? 1등급에서는 개발을 할 수 없는 법조항 때문이고, 이를 위해 서울시와 이대가 짜고 친 고스톱 아닌가? 참고로 비오톱은 특정 동식물이 하나의 생활 공동체를 이루는 생물서식지를 일컫는 말인데, 서울시는 조례를 통해 '비오톱 1등급지'에 대한 개발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떤 개인과 집단이 '도덕적'으로 '공공선'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인가? 가끔 캠퍼스를 거닐다가 애써 숲의 파괴를 규탄하는 대자보라도 붙어있지 않을까 기대하지만...보지 못했다. 나라도 붙여야 하나? 이미 잘라진 나무들만큼이나, 갈 곳 잃은 동물들 마음 만큼이나 허망하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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