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유기라고 욕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할 수 없다. 나는 학년 초에 학생들에게 이야기한다. "얘들아, 만일 학교 내에서든 학교 밖에서든 누군가 너희를 지속적으로 괴롭히거나 때리거나 욕하거나 그런 일이 발생하면 일단 경찰에 먼저 신고해. 그리고 선생님과 학교에 말해 줘. 선생님에게 미리 말해주면 고맙겠지만,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그런데 경찰에는 꼭 신고해."
진심으로 나는 학교 폭력 문제는 학교 내에서가 아니라 학교 밖에서부터 해결되어야 한다고 본다. 학교에서는 학교 폭력 문제가 발생하면 학교 내에서 '조용히' 해결하려고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학교의 치부를 밖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가해자나 피해자나 결국 한 학교의 학생이며, 교사들에게는 똑같은 제자이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사건을 해결하기 힘들 뿐더러 이와 같은 사건을 '객관적으로' 다루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학교 폭력은 '무조건' 피해자, 약자 편에서 문제에 접근해서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그런 식으로 해결하려면 가해자들의 학부모가 들고 일어선다. 교사들에게 말한다. "선생님들은 교육자 아니에요? 애들이 학교 생활하다보면 싸우고 그럴 수도 있지. 그렇다고 교육을 포기하고 처벌만 하려고 하는게 교사에요? 미리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미리미리 알아서 조치를 취했어야죠. 어떻게 일이 여기까지 오도록 방치했어요? 이건 선생님 책임도 있는데 왜 우리 애만 처벌하려고 하죠?"
차라리 학교 밖에서 경찰이 수사를 하고, 가해 학생들이 수사 대상이 되어 몇 번 조사받고 형사 처벌을 받네 마네 그렇게 되어야 학부모들도 "선생님 좀 도와주세요. 저희 아이가 그렇게까지 나쁜 짓을 한 줄은 몰랐어요. 전학이라도 가서 학교라도 다닐 수 있게 해 주세요." 하고 나온다.
최근에 어느 학급에서 몇명이 떼로 몰려다니며 급우들에게 이죽거리고 빈정거리고 욕하면서 자기 그룹의 정체성(?)을 찾으며 위세 떨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적발(?)되었다. (원래 '자기들만의 의리와 소속감' 같은 것을 중시하는 아이들은 공동의 적을 만들어 놓고 그 아이를 욕하고 괴롭히며 동질감과 정체성을 찾으려하는 경향이 있다.) 다행히 아직 큰 폭력으로 옮겨지진 않은 치기 어린 짓이지만, 피해 학생들은 많이 힘들었나보다. 그런데 해결 과정에서 담임 교사가 - 정말 친절하고 다정하기 이를데 없는 교사이건만 - 봉변을 당하고 있는 것 같다. 하긴 그들이야 당신 자식의 이야기만 진실로 믿고 - 아니 믿고 싶겠지- 있을테니...아, 진짜 교사 노릇 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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