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나는 고민했는데...

사회선생 2014. 6. 23. 13:28

 수업 시간에 사회계층화현상을 설명하다가 교과 내용에 있는 '사회적 희소 가치의 분배 룰은 공정한가?'에 대해서 논쟁이 벌어졌다. 물론 질문을 던졌다. '외모를 기준으로 사회적 희소 가치가  배분되는 것은 공정한 것인가?' 그에 대해 학생들은 불공정하다는 답변을 쏟아냈다. 노력이 아니다, 타고난 거다, 지나치게 많은 이익을 얻는다 등등. 그래서 질문을 살짝 삼천포로 빠뜨려보았다. 

 "얘들아, 전지현의 얼굴과 몸매지만 머리는 꼴통이야. 오나미의 얼굴과 몸매지만 머리는 아인슈타인이야.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전지현과 오나미의 사례를 들었을 뿐, 비하하는 의미는 없음을 알아주시길!)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걸 선택할래?" 반반까지는 아니어도 40명 중에 후자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몇 명은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하나도 없었다.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냐는 식이다. 그건 선택의 여지없이 전지현이란다. 전지현의 얼굴과 몸매만 가지면 세상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힘들게 머리 쓰면서 사냔다. 아인슈타인처럼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돈이 생기냐, 남자가 생기냐, 평생 공부만 해야 하는데 골치 아프다며 그런 질문을 하는 나를 질책(?)했다.  

  난 강변했다. "의미있게 살 수 있잖아. 훌륭한 지식인 한 명이 인류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할 수도 있는거고..." 학생이 답변한다. "에이, 선생님, 전지현도 우리에게 얼마나 큰 즐거움을 주는데요. 타인을 즐겁게 해 주는 삶도 의미있어요. 게다가 바보면 더 재밌게 해 줄거 아니에요?"

 아이들이 빵 터졌다. 아, 정말 내가 졌다. '편한 삶'보다 '의미있는 삶'을 찾기를 바라지만, '순간적인 즐거움'보다 '지속되는 공공의 가치'를 생각해 주길 바라지만, 요즈음 같은 세태로는 무리인가보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면서 그 불공평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것이 저항하며 머리 아프게 사는 삶보다 훨씬 세상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이니 학생들의 그런 선택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더 씁쓸한 건 과연 남학교에서도 이렇게 답이 나왔을까 하는 점이다. "강동원의 외모인데 꼴통이야, 옥동자의 외모인데 아인슈타인의 머리야. 어느 쪽을 선택할래?" 남학교를 떠난 지 이제 십 년 가까이 되어서 정확히 비교해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후자가 더 많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