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제자들이 주는 기쁨

사회선생 2014. 5. 26. 22:13

 작년도 졸업생 제자들이 찾아왔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번다며 내게 핸드크림 선물을 가져왔다. 감격했다. 핸드 크림 때문이 아니라 핸드 크림을 넣은 종이 봉투때문에... 그 녀석은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회사의 제품으로 골라왔다는 것을 강조했다. (내가 수업 시간에 종종 생명과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 것이 통했나보다. 기분이 좋다.) 종이 봉투의 한 면에는 '우리는 여전히 동물 실험과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라는 글귀가,  다른 면에는 'fighting animal testing' 이라고 씌어 있었다. 토끼 두 마리의 그림자와 함께... (실제로 화장품 동물 실험에서 토끼가 많이 희생된다.)  

 아무튼 내가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가 내게 줄 선물을 신경 써서 골랐고, 자신들도 그런 제품을 사용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니 그처럼 반가운 일이 어디 있는가? (교장선생님이 들으면 좋아하지 않겠지만 내게는 그 녀석들이 수능 만점 받는 것보다 훨씬 기분 좋은 일이다.) 졸업생들은 내가 수업 시간에 에어컨을 늘 끄면서 에어컨은 아주 이기적인 기계라 내부를 식히는대신 외부를 데워서 점점 밖의 기온을 높인다고 했단다. 그러면서 에어컨을 끄면 지구 온난화로 점점 사라져가는 북극곰을 조금 더 살 수 있게 해 줄 수 있다고 했단다. 귀여운 북극곰을 떠올리며 조금 불편해도 참자고... 별 걸 다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누군가는 내 더위가 문제지 북극곰 따위까지 왜 생각해야 하냐고, 그런다고 무슨 지구온난화 문제가 해결되냐고 투덜거릴지 모른다. 왜 에어컨도 못 켜게 하며 학생들에게 참지 않아도 될 더위를 참게 만드냐고 욕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나의 제자들이 자신과 이웃과 저 멀리 북극에 사는 곰과 남극에 사는 펭귄까지 내 이웃으로 여기며 배려하는 삶을 살게 되길 바란다. 그것은 세상을 조금 더 살기 괜찮은 곳으로 만드는 일이니까... 물론 나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입으로만 떠드는 비겁한 이론가에 머물러 있다. 아니 사실 이론가로서도 아주 별볼일 없다. (얼마나 존경스럽고 훌륭한 철학자들이 많은데...)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말에 영향을 받고, 행동을 바꾸는 제자들이 있다니 문득 혹시 내가 다른 말과 행동으로 녀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없나 되돌아보게 된다. "얘들아 부모가 훌륭하지 않아도 자식은 훌륭하게 되길 바라는 법이란다. 선생님은 별로여도 너희들은 훨씬 더 괜찮은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것만은 기억해다오." 기특하고 고맙고,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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