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은행에 근무하는 친구를 만나러 간 적이 있다. 최신식 건물의 6층에 위치한 사무실 안에는 그 현대식 건물과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온돌로 된 황토방 여직원 휴게실 - 내부에 한옥식 황토방을 지어놓았다.- 과 카페식의 휴게실이 매우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쉴 수 있는 시간이 있냐고 묻자 요즈음은 일이 많아서 쉬지 못하지만, 임산부나 몸이 안 좋은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용하다고 했다. 부러웠다. 근무 시간 중에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회사의 복지가...
최근 우리 학교에도 여교사 휴게실이 생겼다. 학교 건물 밖으로 나가서 강당 2층에 어설픈 칸막이에 소파 두 셋트, 테이블 세 개와 의자들, 정수기 한 대가 놓여진 것이 고작이지만 - 심지어 세 학교의 교사들이 사용하는 것이란다. - 일터에 쉴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반가운 일이다.
왜 만들었는지 자세한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여교사의 복지를 고려한 온정주의에서 만들어진 것 같지는 않고, 휴게실의 설치 여부가 학교 평가의 주요 항목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쥐도 새도 모르게 여교사 휴게실이 급조되었고, 아조 조용히 고지된 것을 보면... 넌지시 고지되었다는 사실은 '만들어 놓기는 했으나 사용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간접적인 메시지처럼 들렸다. (교무실과 멀어서 가게 될 것 같지도 않은 위치다.) 근무 시간 중에 여교사들이 휴게실에 상주하여 잠이나 자고, 수다나 떨까봐 우려하는듯 하다. 그럴 시간이나 제대로 있을지... 어느 직장이나 힘들고 바쁘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학교도 나름대로 할 일들이 많다. 그냥 수업만 들어가고 쉬는 시간에는 자유로운 것이 결코 아니다.
직장은 돈을 주는 곳이니 일이나 해야지 어떻게 근무 시간 중에 쉴 수 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쉴 수 있는 공간이나 시간은 곧 삶의 질이며, 직장에서 이를 보장하는 것은 그 직장의 수준을 말해주는 것이다. 요즈음은 좋은 직장이 좋은 복지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사에게 좋은 학교는 학생에게도 좋은 학교, 누구나 오고 싶어하는 학교가 되지 않을까? 편하게 해 주되, 중요한 일은 놓치지 않는 학교. 이것이 힘든 일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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