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수업을 안 들어도 될까요?

사회선생 2014. 5. 28. 00:45

더 이상 열심히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우리반에 한 명 있다. (강박이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한다.) 유감스럽게도 성적은 뛰어나지 않지만, 상승세를 타고 있고, 워낙 열심히 공부하다보니 급우들도 모두 '감탄'과 '인정'을 할 수밖에 없다. 너무 유별나게 공부를 해서 교우 관계가 걱정스러웠는데, 사소한 학급 일에도 적극적이고, 누구에게나 예의바르게 행동하기 때문에 급우들과도 잘 지낸다. 그런데 얘가 내게 내려와서 고민을 털어 놓는다.

"선생님, 저, 이제 OO 시간에는 수업을 듣고 싶지 않아요. 그 시간에 다른 공부해도 될까요?"

 많은 학생들은 - 특히 예체능 학생들이 그렇다 -  자기들이 알아서 수업 시간과 무관하게 자기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 수학 시간에는 완전 파업한 학생들이 대부분이고, 영어 시간에는 완전 파업과 태업과 정상이 적당히 섞여 있다. 사탐 시간에는 그나마 덜한 편이다. 태업 상태인 학생들이 좀 있긴 하지만 파업 상태인 학생은 없다. 그래도 문과반이라 국어는 나름대로 파업생 없이 열심히 했는데, 요즈음은 그 마저도 위태로운가보다. 아무튼 얘가 수업 시간에 파업 선언을 할 정도면 이건 대단한 사건(?)이다. '학생다워야 한다'며 모든 시간 최선을 다 하던 학생이였기 때문이다.

 담임 교사로서 난감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도움이 안 된다는데, 일분 일초를 아쉬워하며 열심히 하는 아이에게 그래도 수업을 들으라고 하는게 옳은지, 그냥 너 하고 싶은 공부 하라고 하는게 옳은지... 다른 학생 같으면 공부하라고 한다. 하기 싫어서 핑계 대는 것이니까... 그런데 얘는 아니다. 진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공부를 알아서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 과목은 듣는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너마저 안 듣는다면 선생님이 매우 실망하실거 같은데..."

 "워낙 안 듣는 애들이 많으니 선생님도 이제 별로 수업에 신경을 안 쓰세요. 그래서 도움도 안 되고... 그냥 저 혼자 알아서 공부하고 싶어요.시간이 좀 아까워요."

 아, 정말 미치겠다. 이럴 때 뭐라고 대답해야 한단 말인가. 악순환이다. 듣는 아이들이 없으니 교사는 당연히 수업에 신경을 덜 쓰게 되고, 그래서 학생들을 더 떨어져 나가고... 교사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기도 힘들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교육 정상화에 역행하고 있는 입시 제도는 문제다. 수능에서 선택의 폭을 넓혀 놓으니 포기해도 되는 과목들이 생겼고, 그런 이유로 정상적인 학교 수업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나 역시 2학기가 두렵다. 수능에서 선택자가 아닌 학생들은 이제 수업 시간을 완벽하게 외면하기 때문이다. 수업할 맛이 나겠는가?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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