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고사 첫날. 교실에 긴장감이 감돈다. 그러나 실상은 조금 달랐다. 어떻게 공부하는지 살펴봤더니 첫 시간 시험 보는 미적분과 통계를 공부하는 녀석은 몇 명 없고, 모두 2교시에 보는 한국지리책만 펼쳐 놓고 있다. 어려운 문제는 버리더라도 쉬운 수학 문제는 풀어보겠다는 의지는 없다. 그냥 편하고 필요한 과목만 공부하겠다는 심산이다. 수시로 대학 갈 학생들이 적고, 예체능계 학생들이 많다보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다보니 우리 반의 성적이 좋을 리 없다. 반 전체 평균이 크게 의미 없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는 시험이 끝날 때마다 친절하게(?) 학급 평균의 순위까지 알려주는데 우리 반이 10개 문과반 중 10등이다. 예체능 학생들이 많기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그래도 꼴등이라는 것이 편치는 않다. (학교에서도 그런 심리를 의도하고 순위를 늘 알려주는거겠지만...) 그래서 학생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내가 너희들의 발전을 바라긴 하지만, 등수에 연연하지 않는건 알지?" 모두 깊이 공감한다. "그런데 두 자리 숫자 등수를 받고 보니 너무 눈에 띄어서 민망하다. 꼴등은 좀 그렇잖니? 우리 웬만하면 전체 평균은 9등 정도로 합의보자. 오케이?" 웃으면서 알겠다고 하긴 하는데 솔직히 신뢰는 가지 않는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내신을 잘 살려서 수시모집으로 대학에 가야 하는 2,3 등급대의 학생들 몇명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학교 시험이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예체능은 수능 - 그것도 두 세 과목만 보면 된다. - 과 실기만 보면 되고, 5,6등급인 학생들은 전문대 정시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 역시 수능에서 잘 하는 과목을 집중 공략하는 전략이 훨씬 효율적이다. (그런데 공부해 본 사람들은 알지만, 한 과목을 포기하면 포기한 만큼 다른 과목의 점수가 오르는가? 오히려 학습의 리듬이 떨어지고 부담이 감소하여 성적이 전체적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전략은 세웠으나 전략대로 되지 않아서 전체 성적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얘들아, 미대도 아티스트를 원하는 게 아니라 공부 잘 하는 학생을 원해. 너희가 어차피 피카소나 로뎅이 아닌 이상 국어 영어 잘 해야 대학간다. 3등급 두 개, 힘들면 한 개만이라도 확실히 잡아서 미대에 가자." 담임의 희망은 이렇게 소박한데, 우리반 미대 지망 학생들에게는 3등급 하나를 받기 위해 수학도 포기하고, 내신도 포기해야 할 만큼 힘든 일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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