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급식비와 방과 후 수업료 미납자 명단입니다.

사회선생 2014. 4. 29. 23:37

 행정실에서 급식비와 방과 후 수업료 미납자들 명단이 넘어왔다. 방과 후 담당 교사는 학생들이 빨리 방과 후 수업료를 납부해 줘야 교사들 수업료를 지급할 수 있다고 독촉하지, 행정실에서는 급식비가 완납되어야 차질없이 급식 제공이 가능하다고 하지... 이틀 간격으로 미납자 명단이 계속 담임들에게 날아오며 압박(?)이 세지고 있다.

 정말 담임 교사 하기 싫어질 때 중의 하나이다. 학생에게 말하기엔 민감한 사안이고, 그렇다고 학부모에게 전화하기에는 매우 부담스럽다. 그들인들 빨리 내고 싶지 않겠는가? 물론 그들 중에는 낼 만함에도 불구하고, 안 내고 버티는 - 결국 그렇게 하면 이러저러한 장학금으로 메꿔주고 졸업시켜주니까 - 사람도 드물게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우선적으로 급식비와 방과 후 수업료를 챙길 만큼 여유가 없는 것 같다. (부모 입장에서 웬만하면 자식 수업료나 밥값부터 챙기지 않겠는가?)

 우리 반이 40명이다. 그 중 정부의 학비 지원을 받는 학생이 8명이고, 기타 장학금 - 물론 저소득으로 인한 장학금이다. - 을 받는 학생이 두 명이다. 그리고 그 조건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형편이 좋지 않다며 장학금을 신청해 달라고 하는 학생이 지금 두 명 대기중이다. 물론 급식비와 방과 후 수업료 미납자는 그 12명 중에 있다. 한 학생의 경우, 작년에는 학비와 급식비까지 지원을 받았는데, 올해에는 소득 수준이 높아져 급식비까지 지원받지는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3월부터 계속 점심과 저녁값이 누적되어 벌써 꽤 큰 액수가 되었다.(고등학교는 야간 자율학습때문에 저녁까지 학교에서 먹는 학생들이 많다.) 

 학생을 불러 조심스럽게 묻는다. (부르는 것도 일이다. 여학생들은 담임이 부르면 걔를 왜 부르는지 필요 이상의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지금 미납자 명단이 내려왔는데, 아직 안 낸 것으로 되어 있더구나. 혹시 납부했는데 뭔가 착오가 있는건지, 아님 아직 납부를 못 한 건지 부모님께 확인해 보고, 아직 납부가 안 되었다면 언제까지 납부할 수 있는지 내게 좀 알려줄래?  그리고 만에 하나, 납부하기 곤란한 사정이 있으면 내게 이야기 해 주고...알았지?" 

 아, 정말 교사로서 - 시쳇말로 - 모양 빠지는 일이다. 국민 소득 2만불의 나라에서 교사가 학비 내라고 학생에게 채근하고 있다니... 우리 학교의 문제인지, 우리 나라의 문제인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교사로서의 업무는 아닌 것 같은 찝찝함을 지울 수 없다.    

 

p.s. 가까운 동료 교사가 미납자 명단을 받은 후 학부모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아주 완곡하고, 매우 친절하며, 정말 송구한 마음을 가득 담아서 구구절절... 그 학부모에게 7개의 글자로 답문이 왔다. '제가 운전중이라...' 그리고 그 학부모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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