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고로 온나라가 애도 분위기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이번 주 금요일에 하기로 했던 체육대회가 결국 취소되었다. 그런데 그 과정이 깔끔하지 않았다. 갑자기 퇴근 직전에 임시 직원 회의를 한다고 전교사를 소집했다. 그리고 교육청에서 공문도 왔고, 현재 우리나라의 분위기를 생각해서 체육대회를 취소하기로 했다며 이에 대해 교사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하였다.
이 때부터 혼란스러웠다. 통보를 하겠다는 것인지, 교사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다시 결정을 하겠다는 것인지... 교장 교감 등은 간부회의 결과 취소하기로 하였으니 교사들도 이에 찬성해 주기를 바랬던 것 같다. 하지만 담임교사들은 학생들이 체육대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취소 결정에 호응하기 힘들었다. 몇 주 전부터 반티셔츠를 고르고, 대표 선수를 뽑고, 피구 연습을 하며 들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방금 전까지 봤기 때문이다.
회의 아닌 회의가 시작되었고, 늘 그렇듯이 갑론을박의 분위기가 아닌 눈치 보기가 시작됐다. (유감스럽게도 교무실의 분위기가 그렇다. 어차피 들어주지도, 반영하지도 않을 걸 경험적으로 오랫 동안 보아 왔기 때문에 섣불리 자기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때문에 누군가 말을 하면 저 사람때문에 회의 시간만 길어지게 된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결정은 이미 되어 있기 때문이다.) 1안 취소한다, 2안 오전에만 간소화해서 한다. (2안은 설명을 들어보니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체육대회였다.) 3안 연기한다는 세 가지 항목으로 거수 투표를 하여 3안이 결정되었다. 그러자 부장 교사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 둘 마이크를 잡으며 왜 연기가 불가능한지, 왜 취소를 해야 하는지 교사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3안을 삭제시킨 후, 다시 투표했다.
학교의 의도대로 취소가 결정될 때까지 투표를 계속할 것 같았다.(나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으리라.) 그 과정이 마뜩찮아 기권하였다. 차라리 처음부터 통보를 하는 편이 나았다. 이런 식의 투표는 아니 한 만 못하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취소하기로 결정했으니 아쉽지만 학생들을 설득해 달라고 통보하고 죄송하다, 협조해 달라, 후속 책임은 학교에서 지겠다고 하면 깔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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