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머리카락을 기르지 못한다. 긴 머리가 어울리지 않는 탓도 있지만, 견디지 못하는 성격 탓이 더 크다. 그런데 앞머리가 자꾸 흘러내려 - 자를 수는 없고 - 할 수 없이 핀을 하나 꽂았는데 생각보다 편했다. 그리 아름다운 모양새는 아니었겠지만 - 원래 본판이 아름다운 그림과는 거리가 멀다. - 그렇게 심각하게 품위를 손상시키거나 남들의 눈에 이상하게 보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요즈음 이러 저러한 일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에 집중력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리고 핀을 꽂았다는 사실도 잠시 잊고 다녔다. 그렇게 다니는데, 한 무리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아니나 다를까 또 위 아래로 스캔하며 별 것도 아닌 것에 관심을 갖는다. 타인의 흠을 찾아 빈정거리고 깎아 내리는 말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사람들이 몇 명 있다. (그 심리는 무엇일까 궁금하다. 그런 말을 하면서 자신이 유머있고 재치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나? 타인을 깎아내리면서 자신의 위신이 올라간다고 생각하나? 타인이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나? 정말 그 인간 심리의 기저가 매우 궁금하다.) 그런 사람들인줄 알면서... 대답한 것이 화근이었다. 머리에 핀을 꽂았다고 말을 걸 때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됐을텐데, 대답을 한 것이다. 그것도 솔직하게... "책을 보는데 자꾸 방해가 되는 것 같아서요." 그랬더니 그네들끼리 또 낄낄거리며 비아냥거린다.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책을 본다는 사실에 잘난척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모른척 하고 등 뒤의 웃음 소리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아, 책을 읽는다는 말을 하다니... 그냥 가만히 있을걸. 솔직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게 내가 왜 솔직하게 대답을 했을까? 그네들에게는 쓸데없는 말에 불과한 것을..."
어차피 대화가 되지 않는 사람들과는 그저 적당히 지내면 된다. 친해질 필요도 없고 - 물론 그럴 일도 없겠지만 - 그렇다고 적대적으로 지낼 필요도 없다. 의례적인 말만 하며 지내고, 사적인 말을 섞지 않으면 된다. 대답도 진심으로 할 필요가 없다. 진심으로 받아줄 줄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네들이 지금은 함께 낄낄거리지만 금방 돌아서면 또 서로 낄낄거리는 사람들 아닌가? '쟤는 시집을 가네 못 가네, 쟤는 버릇이 없네 있네, 쟤는 말을 막하네 마네...' 그네들의 말본세를 반면교사 삼아서 저러지는 말아야지. 어떤 후배에게도. 어떤 선배에게도... 갑자기 예전 어느 후배가 선배에게 붙여준 별명 '빙썅'이 생각나는건 왜일까?
수업 시간에 들어가서 학생들과 오프닝으로 한 말, "얘들아, 유머란 무엇일까?" "타인을 조롱하면서 자신들끼리 웃고 떠들면 유머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묻자 한 녀석이 대답한다. "아뇨, 다 즐거워야 유머지요." 그래 네가 낫다. 기분 좋게 수업했다. 학생이 교사들보다 나을 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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