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얘들아, 미안하다.

사회선생 2014. 4. 17. 21:22

얘들아, 얼마나 무서웠니? 어둡고 기울어진 선실안. 방송에서 나오는대로 선실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지만, 점점 물은 차 오고... 이제 나갈 수도, 올라갈 수도, 그러다가 더 이상 움직일 수도 없었겠지.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감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쳐지는구나.

 왜 너희들은 어른들 말을 믿었니? 아무래도 가만 있으면 안 되겠다고 뛰쳐 나오는 어른들 좀 따라 나오지 그랬니? 어른들 말 잘 듣는 너희들이, 그냥 숨죽이고 앉아 공포에 떨며 손 잡고 앉아서 서로 격려하며, 곧 구조하러 와 줄거라고 어른들을 믿고 있었을 너희들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고이는구나. 왜 그렇게 착하게 선생님과 어른들 말만 믿고 기다렸니? 그냥 살겠다고, 어떻게든 살겠다고, 어른들 말 못 믿겠다고, 선생님 말 못 믿겠다고 뛰쳐 나와 갑판 위로 어떻게든 올라오지 그랬니? 정말 부끄럽고, 미안하고, 화가 나는구나. 왜냐하면 나라도...너희들과 함께 있었다면, 착하게 얌전히 선실에서 기다리자고 했을테니까...

 선실에서 삼삼오오 모여 게임하며, 수다 떨며, 사진 찍으며, 카톡하며 즐겁게 수학 여행 가고 있었을 너희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구나.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어른들은 아직도 너희들이 탄 배가 왜 그렇게 기울며 가라앉았는지, 왜 한 시간 반 동안 빨리 구명조끼 입고 갑판 위로 올라오라는 방송 대신, 선실에서 가만히 기다리라는 멍청한 방송을 계속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더 미안하다.

 얘들아, 부디 고통이 적었기를, 이제는 어둠과 추위와 물의 공포가 없는 평안한 곳에 있기를... 그리고 아직 살아 있다면 아무리 힘들고 무서워도 조금만 더 노력하며 버텨주기를... 어른들은 맨날 너희에게 노력하라는 말만 하는구나. 어른들은 아무 것도 못하면서... 미안하고 미안하다. 부디 고통없는 곳에서 평안하길. 그리고 어른들이 조금 덜 미안하게 너희들을 구조할 수 있는 기회를 조금 더 주길... 염치없지만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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