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답이 없는 수학 시간

사회선생 2014. 4. 10. 22:28

모의고사를 본 날이다. 3학년은 거의 한 달에 한 번 꼴로 모의고사를 본다. 2교시 수학 감독을 끝내고 나오는데 동료 교사가 내게 말한다. "그 반 애들 수학 시간에 딱 10명 풀고 있더라. 아무리 문과지만 너무한 거 같애." 예체능 학생이 많다는 특수성을 차치해도 이건 너무 하는거 아닌가 나 역시 걱정스러웠다. 40명 중 30명은 처음부터 자고, 10명만 그래도 문제를 끄적이며 끝까지 풀고 있더란다. 비단 우리 반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문과반의 경우 수학 포기자들이 너무 많다.

 혹자는 우리나라 고등학교 수학이 너무 어려워서 그런 현상이 발생한 것이므로 수학 교육 과정을 쉽게 개편해야 한다고 하지만, 과연 쉽게 개편한다고 학생들이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할 지 의심스럽다. 중하위권 대학에서 지금처럼 수학을 선택 과목으로 두는 한, 굳이 수학을 - 수학은 정말 학생들 머리에 쥐 나게 하는 순수 학문 아닌가? - 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보니 수업 시간도 별만 다르지 않다. 며칠 전에는 수학 선생님에게 한 마디 들었다. "그 반 애들, 수학 시간에 너무 자. 어떻게 좀 해 봐." 내 수업 시간에는 똘망똘망 대답 잘 하고, 잘 웃고, 잘 듣기 때문에 수학 시간에 그 정도로 심각한지 몰랐다. 그런데 내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 비몽사몽 혼수상태인 학생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수학 선생님은 수학 공부 안 해도 좋으니 그렇게 자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날 종례 시간에 들어가서 "얘들아, 어떻게 해야 수학 시간에 안 자고 수업을 열심히 할 수 있을까?" 얘기했더니, "원빈같이 잘 생긴 수학선생님을 뽑아주세요." 농담으로 받는다. "원빈같이 생긴 남자가 머리에 쥐나는 수학 공부 하겠니? 꿈도 야무지다." 나도 농담으로 받고, 진지하게 얘기해 보자고 했더니 그럼 졸거나 자는 애들에게 쵸콜렛 사오기 같은 벌칙을 주자고 제안한다. "그럼 우리 반에 파산할 녀석 많아질 거 같은데... 너희는 쵸콜렛 과식으로 뚱보될거고...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자" 대답하고 나왔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개별 교사에만 의존하기에 수학은 너무 어렵고 힘든데다가 필요성 조차 별로 없는 과목이 되어 버렸다. 이런 식이라면 고등학교에서도 수학을 선택 과목으로 돌리는 편이 차라리 낫다. 정상적인 수업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학생들 소원대로 원빈같은 남자를 수학 교사로 데리고 올 수도 없고, 정말 걱정이다. (수학 성적이 낮은 것이 걱정이 아니라 학교에서 이렇게 잠으로 허비하는 시간들이 많아지는게 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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