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다수결로 해서는 안 된다

사회선생 2014. 4. 9. 08:29

 조회 시간에 들어갔더니 학생들이 체육대회를 앞두고 반티셔츠를 사겠다고 한다. 그래서 티셔츠 값은 얼마인지,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는지 물었다. 티셔츠 값은 만원이고, 다수결로 정했다고 문제 없다는 식이다. 어설프게 사회 공부를 한 녀석들은 다수결의 원리가 만능이라고 착각한다. 물론 다수결은 매우 유용한 의사 결정 방법 맞다. 하지만 다수결로 결정할 수 없는 사안들은 매우 많다. 그런데 학생들은 어떤 사안이 그런지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예를 들어 설명해 주었다. (덕분에 조회 시간이 길어졌다.)

1. 한 학생이 감기에 걸렸다. 얘는 열이 있어서 추위를 탄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모두 체육을 하고 와서 덥다. 창문을 열었더니 감기 걸린 친구가 춥단다. 그럼 이 경우에 다수를 위해 문을 열어두는 것이 옳은가?

2. 체육대회 기분을 내기 위해 사비로 반 티셔츠를 사고 싶은 친구들이 많다. 그런데 그 비용이 부담스러운 사람이 한 명 있다. 돈이 없다고 친구들에게 솔직히 말하기도 힘들다. 이 경우 다수결로 결정했으니 그 친구에게 어떻게 해서라도 옷을 사라고 하는 것이 옳은가?

3. 모두 공부하기 싫은 나른한 오후이다. 마침 선생님도 안 들어오셨다. 그 때 반장이 선생님을 모시러 가려고 하자 모두 말리며 다수결로 결정하자고 한다. 다수결로 그 한 시간 편히(?) 쉬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옳은 결정인가?

 다행히 학생들은 다수결이 항상 옳은 결정이 될 수 없으며, 소수자가 약자일 경우,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의 판단을 해야 하는 경우 등에서는 다수결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조회를 끝낸 후 나왔다.  

 그런데 1교시가 끝나고 반장이 내려왔다. "선생님, 만장일치로 반티셔츠를 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래서 내가 말했다. "비밀 투표 했니? 거수로 했니? 만일 거수였다면, 자신의 처지나 위치가 드러나는 것이 싫어서 할 수 없이 찬성한 것인지도 몰라. 그럴 가능성은 없을까?" 우리 반 반장 녀석은 멘붕에 빠졌다. 이 쯤에서 하게 허락해 주는 것이 좋은지, 끝까지 하지 말자고 해야 할 지 사실 나도 혼란스럽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