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잔밥이 아니라 잔반인데...

사회선생 2014. 3. 29. 21:28

늘 한 수 가르쳐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미처 내가 몰랐던 것을 알려주거나, 깨닫게 해 주는 사람은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진심으로 고맙다. 단, 빈정거리는 말투를 가진 사람은 예외다. (의외로 빈정거리는 말투를 유머로 착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런데 신기한건 그런 사람들은 또 그런 사람들끼리 친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보들보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그런 식의 말투를 가진 사람은 결코 좋아할 수도, 친해질 수도 없다.)

 오랫동안 나는 '과부화'가 맞는 말인줄 알았다. 내 나름대로 화를 재앙의 뜻을 가진 화(禍)로 사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과부하(過負荷)'가 맞는 표현이라는 것을 어느 지인이 알려주었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런 이유로 나는 학생들이 어휘를 잘못 사용하는 걸 발견하면 대부분 고쳐주는 편이다. 교사로서의 책임감이다. 그리고 친한 사람들의 경우에도 -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 동일하게 그런 실수를 반복하면 알려준다. 그러나 지금은 정말 신뢰할 만한 사람에게만 이야기를 해 준다.  

 언젠가 - 나는 친하다고 생각했던- 동료가 '봉독하시겠습니다' 라는 말을 자주 하기에, 그건 자신을 높이는 말이라며 '봉독하겠습니다'가 맞는 말이라고 쪽지로 조용히 알려줬더니 그 반응이 '냅둬요. 그렇게 살다 죽게.' 였다. 난 그 때 정말 무안했고, 깨달았다. '모든 사람이 배우는 걸 좋아하는건 아니구나. 이런걸 자존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구나...'  

 만일 누군가 나에게 그런 쪽지를 보내왔다면 난 '앗, 저는 몰랐어요. 고마워요.' 였을거 같다. 암튼 그런 일 이후로 나는 정말 친한 사람이 아니면, 그리고 먼저 조언을 구하지 않으면 조언을 삼가는 편이다. 그런데 요즈음 나를 갈등하게 만드는 말이 있다.

 학교에서 많은 사람들이 '잔밥'이라는 잘못된 표현을 사용하고, 심지어 가정 통신문에까지 사용하고 있다.  잔(殘)은 한자이고, 밥은 우리말이다. 이렇게 조합되는 단어는 없다. '잔반'이거나 '남은 밥'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더 정확한 표현은 잔반이다. 왜냐하면 남은 음식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음식 남기지 않기' 나 '잔반 줄이기' 가 맞는 표현이다.

 학생들이 그렇게 잘못된 단어를 학습하는 것이 두려워서 나는 우리반 학생들에게는 제대로 알려주었다. 그러나 교무실에서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교실 게시판에, 가정통신문에 그렇게 나가는 건 챙피한데... 국어 교사 출신인 교장선생님은 뭐하시나 몰라. 시인이라 언어의 조탁에 관심이 많으실거 같은데... 그렇게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는 말을 안 잡아주시니 원.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맞춤법이 바뀌었나? 아니면 우리 학교에서만 그런 말을 만들어서 쓰기로 약속했나? 사소한, 그러나 참 예민한 일이다.  조직 생활 정말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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