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정보 유출에는 동의한 적 없는데요

사회선생 2014. 1. 23. 18:12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공포영화가 있었다. 요즈음  ‘나는 너의 모든 신상 정보를 알고 있다’는 공포가 대중을 패닉 상태에 빠뜨리고 있다. 국민은행, 국민카드 등에서 대량의 개인 정보가 관리 소흘로 인해 유출되었기 때문이다. 거의 천 만 명이 피해자라고 하는데, 한 개인당 유출된 정보 건수가 수 십 가지에 이르고 있다니... 속된 말로 다 털린 것이다. 매달 무슨 카드로 얼마를 결제하고 어느 계좌에서 몇 일날 빠져 나가는지까지 정말 세세히 정보를 도둑맞았다. 그리고 2차 범죄에 어떻게 이용될 지 모르는 상태이다.

 늘 그럴 가능성은 내재되어 있었다. 계약 관계에서 갑인 은행과 카드사는 필요 이상의 정보를 가지려 했고, 을인 울며 겨자 먹기로 - 동의하지 않으면 카드 발급이 안 된다니 - 개인 정보를 모두 내 주었다. 갑은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을은 지금 언제 어떻게 피해가 올 지 모르는 상태에 빠져 있다. 마치 공포 영화처럼, 공포를 안겨주는 대상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피해를 당하게 될 것이 명약관화한 공포 상태에 대중이 빠져있다.

 어떻게 이리 허술하게 개인 정보 관리가 되었는지 한심한 일이지만, 어쩌면 이는 근본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결함이 있는 시스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건은 너무 큰 건이어서 걸렸기에 망정이지 아마 통신사나 보험사, 기타 홈쇼핑 등에 내가 준 정보들이 알음알음 다른 곳으로 교묘히 빼돌려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사실 누구나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어서 당하고 있지 않을까? 얼마나 많은 스팸문자와 메일에 시달리고 있는가? 심지어 그들은 친절하게 나의 이름을 불러주며 나의 쇼핑 내역까지 파악하고 접근(?)한다.

 한 때 정부에서 국민의 유전자 정보 등을 가지고 있으면 범죄자 검거에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생각이 확 바뀌었다. 국가든 기업이든 정보 유출 가능성은 필연적으로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고, 사고가 발생하면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대형 사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이 도덕적이지 않고, 모든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개인정보 관리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과잉 정보 요구도 사라져야 한다.

 그나저나 다 털렸다는데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모르겠다. 카드 해지 후 재발급 받는다고 해도 카드 도용이나 막을 수 있을 뿐 이미 털린 정보가 회수되는 것은 아니니... 은행이나 금융감독원은 책임을 회피하기 힘들다. 그런데 경제부총리는 '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았냐? 어리석은 사람이 일이 터지면 책임을 따진다'며 피해자들을 질책하는 말을 했단다. 불난데 부채질을 해도 유분수지... 도대체 제 정신인가? 가끔 내가 막가는 이상한 사회에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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