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만큼 자녀 교육에 헌신적인 부모들이 있을까? 그들의 열망이 명문대 진학과 고소득 직업 획득이라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유감이지만 - 그렇게라도 해서 계층적 한계를 탈피하고픈 그들의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이해된다고 해서 수용할 수는 없다. - 명문대를 향해 돌진하는 부모의 열망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중산층은 더욱 그렇다. 조금만 노력하면 보이는 상류층의 고지에 올라 자녀들만큼은 누리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허리띠 졸라매고, 온갖 학원으로 아이를 돌리며 학력 수준을 높이고 스펙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초등학교 때에는 국제중에 보내려고, 중학교 때에는 외고나 과고나 자사고에 보내려고, 고등학교 때에는 SKY에 보내려고 부모들은 노력한다. 자신의 아이가 공부만 잘 하고, 경제적으로 감당할 능력이 되면 기꺼이 보낸다.
그렇다보니 국제중 입시, 외고와 자사고 입시도 치열하다. 실제로 일반 인문계와 비교해 보면 외고와 자사고 입학생들의 성적은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강북의 일반 인문고에서 전영역 1등급을 받는 학생이 한 두 명에 불과하다면 자사고의 경우에는 한 학급 내에서도 2등급 받는 아이들을 찾는 것이 1등급 받는 아이들을 찾는 것보다 쉽다. 서울대를 지역 균형으로 간신히 두 명 보내고 성공으로 여기는 일반고가 있는가 하면, 수시에서만 40여 명의 합격자를 낸 자사고도 있다. 이렇다 보니 공부 좀 하면 자사고에 보내고 싶지 않겠는가? 더 높은 학업 성취를 낼 가능성도 높아지고, 동창들 모두 SKY에 진학할 테니 훗날 사회에 나와서도 좋은 네트워크가 형성될테니 일석이조 아닌가.
그런데 정부에서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할 생각을 안 하고, 외고와 자사고에서 공부 잘 하는 아이들 선발하겠다는 것을 문제 삼는다. 정부 개선안을 보면 '자기소개서에 스펙을 쓰지 마라, 부모의 사회 경제적 지위를 드러내는 말을 쓰지 마라, 중학교 2학년 내신 성적만 절대 평가인 성취 평가제를 반영해라, 전형위원은 일반고의 수석교사를 위촉하라, 교육부와 교육청 관계자가 자사고 면접에 참관하라'가 요지이다. 눈가리고 아옹이다. 이건 더 위험하다.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고나 외고 입시에서는 면접보다는 차라리 시험 봐서 성적으로 일렬로 세워 선발하면 계층이 반영될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입시 과열을 막고 내신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목적이라면 자사고는 재단의 자유 선택에 맡기고 - 어차피 귀족 학교로 허가해 준 것 아닌가? 그렇게 정부에거 규제한다고 귀족학교가 평민학교 되는 것이 아니다. 편법만 더 판을 치게 될 뿐. - 외고나 과고는 대학 진학을 외국어 계열, 자연 과학 계열로 한정시켜 버리면 된다. 그야말로 외고와 과고를 설립 목적에 충실한 '특수 목적 고등학교'로 재정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외국어 영재, 과학 영재들을 선발하면 된다. 소개서에 그와 관련된 화려한 스펙이 왜 문제가 되어야 하는가? 특정 분야에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성과를 낸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이 목적에 충실한 것 아닌가? 물론 진로를 제한시켜 버리면 외국어 영재와 과학 영재들이 일반 인문고로 갈 학생들이 많겠지만... 그들이 입학 후 생각이 바뀌었다면 - 외국어 전문가 하기 싫다, 자연과학대 안 가고 의대가겠다 - 일반 인문고로 보내면 된다. 그렇게만 운영하면 외고, 과고 입시 경쟁 거품은 그냥 꺼지게 되어 있다.
자립형 고등학교는 허가를 내주지 않았어야 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현재의 사립초등학교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게 두어야 한다. 그들이 돈을 받고 학생을 선발하든, 추첨으로 선발하든, 자체 시험으로 선발하든 규모와 정원만 정부에서 규제하고, 운영방식은 전적으로 자유에 맡겨야 한다. 학교 가지고 사업하겠다는데, 아이비 리그를 목표로 공부하겠다는데, 그런 학교에서 자기들끼리만 어울리며 살겠다는데 정부에서 굳이 이를 막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자율형 사립고는 존립 이유나 목적 자체가 불분명하고, 현재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도 못하니 폐지하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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