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가진 자는 자신의 권력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며 확장해 나가려 한다. 인간의 속성인지 권력의 속성인지는 모르겠다. 이 좁은 학교도 조직이라고, 그 안에서 권력과 이권을 둘러싸고 갈등이 심해지는 때가 2월이다. 수업 시수와 업무 분장이 2월에 어떻게 정해지느냐에 따라 1년의 삶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권력을 갖고 있는 만큼 자신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평교사 시절에는 “부장님이 솔선을 보여서 수업 한 시간만 더 해 주시면 어때요?” 이랬던 사람도 자기가 부장이 되면 변한다. “부장이 얼마나 힘든 줄 아세요? 저는 한 시간도 더 못합니다. 12시간 원칙 지켜주세요.” 우리 학교는 교장 교감 아래에 부장 교사만 12명이다. ‘힘든 업무’를 한다는 명분 아래 성과급, 수업 시수, 비담임이라는 혜택까지 챙기면서 그게 원칙이란다. 자기들이 만들고 자기들만 동의하면 원칙인가? 세상에 이런 원칙이 어딨지? 우리나라의 비민주적인 정치 문화의 한 단면은 고스란히 학교 조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담임이 부장보다 덜 힘들다는 전제는 도대체 어디에 근거한거지?’
‘담임은 조회, 종례, 예배 시간에 창체 시간까지 다 들어가야 하는데 그럼 실질적 수업 시수는 주당 20시간이 넘잖아. 오히려 수업 시간 혜택은 담임에게 줘야 하는 것 아니야?’
투덜거리자 옆에 있던 동료 교사가 한 마디 한다. “그래서 억울하면 출세하라잖아.”
부장들은 부장들 대로 그 안에 암묵적인 권력의 위계가 있어서 불만이 많은가보다.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몇 학년 부장이 빼 갔네, 무슨 부장이 일할 사람을 데리고 갔네 난리들이다. 멀리서 보기에는 권력에 비례해서 원하는 사람을 원하는 만큼 데리고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냥 제비 뽑기 하자. 혜택같은거 다 없애고, 부장 교사와 담임 교사 제비 뽑기 하면 어때? 교사 집단만큼 동질성 강한 개인들로 이뤄지는 집단도 없고, 학교의 행정적 업무라는게 하기 싫은 일은 있어도 못할 일은 없잖아. 다들 대학 나와서 훈련 된 사람들이고... 재밌겠다. 제비 뽑기로 하면 권력 위계도 사라지고, 불만도 사라질걸. 제비 뽑기 가장 민주적이네.”
난 진지하게 말하는데, 다른 이들은 뭔 헛소린가 한다. 내가 제정신이 아닌 것인지도 모르지만 난 아무리 봐도 학교 조직이 시대에 역행하고 있는 것 같다. 능력주의를 표방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로남불의 권력 다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내가 자꾸 피아노 방으로 도망가 있는 이유 중 하나이다. 안 보고 싶은데 자꾸 보여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새로 시작한 연습곡은 베토벤의 템페스트 3악장.
'교무수첩' 카테고리의 다른 글
1학년 학생들을 올려 보내며 (0) | 2022.02.17 |
---|---|
우리 학교에서 담임이 힘든 이유 (0) | 2022.02.14 |
교무실 환경 개선 예산 (0) | 2021.12.02 |
예쁘다와 먹다 (0) | 2021.07.24 |
학력격차보다 더 심각한건 (0) | 2021.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