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에 1학년 담임을 하고, 2021년에 1학년 담임을 했으니 15년만이었나보다. 그런데 1학년 담임이 훨씬 좋았다. 줌수업이나 20명밖에 안 되는 정원때문만은 아니었다.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매사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며 순진한 1학년들만의 정서때문이다.
인생 다 산 것 같은 표정으로 물먹은 화장지처럼 늘어져 있는 3학년과 달랐고, 요리조리 머리 굴리며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선택하려는 2학년과도 달랐다. 열심히 공부하면 서울대 갈 수 있다는 - 비현실적인 -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는 1학년의 대책없는 낙천성과 순수함은 현실주의에 찌든 나를 정화시켰다고나 할까?
늘 꼴찌를 하면서도 "선생님, 이번엔 1등할게요. 걱정마세요." 이러는 학생들이 참 이뻤다. "얘들아, 내가 언제 1등 하랬니? 공부는 남과 비교하면서 하는거 아냐. 자신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하는거야." 그럼 학생들은 "와, 선생님 짱! 그래도 1등 해 드릴게요." 늘 큰소리 치며 꼴등을 했다. 수업 시간에는 나름대로 머리를 열심히 굴리며 선생님 말을 잘 듣고, 열심히 배워 보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보였다. 자습이나 하는 3학년, 취사 선택하는 2학년의 수업과 달랐다. 그래서 담임도 크게 힘들지 않았고, 수업도 즐거웠다.
종업식날, 담임반 학생들이 롤링페이퍼를 전달하며 스승의 노래를 불러주는데, 졸업식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이벤트였다. 3학년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도 많고, 진학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졸업식이 별로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런데 1학년은 달랐다. 그냥 고마워했고, 헤여지기 싫어했고, 어떻게든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하려 했다.
종업식날, 나도 진심으로 학생들에게 말했다. "내가 20대나 30대였다면 너희들과 좋은 관계를 맺지 못했을 수도 있어. 공부를 못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 너희들을 매우 힘들게 했을거야. 그런데 난 지금은 공부보다 중요한게 참 많다는걸 느낀다. 너희들이 공부를 잘 했으면 좋겠지만 공부에 힘들어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좋아하고 잘하는걸 찾아봐. 그리고 열심히 하다 보면 길은 분명히 생길거야. 그리고 2학년, 3학년이 되어도 선생님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엔 도와줄테니까 언제든지 오렴." 얘들이 비록 서울대는 가지 못해도 상처받지 않고, 자신들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 낙천적인 기질을 잃지 않고 할 수 있다고 일어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문득 그들이 나를 성장시킨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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