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사회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학교 무용론을 이야기했다. 소위 일타 강사의 온라인 수업을 듣는 것이 학교에서 별 볼 일 없는 교사의 대면 수업 듣는 것보다 낫다고 하며, 교사의 무능과 학교의 불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코로나로 그렇게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자 다들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난리다. 학교의 기능이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코로나는 학교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하고 있다.
학력격차 문제는 누구나 예상했던 문제이다. 온라인 수업은 성적이 중위권인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쳐서 이들을 대거 하위권으로 이동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최상위권과 최하위권은 사실 학교에 나오든 나오지 않든 자기 갈 길 알아서(?) 간다. 최상위권은 학교와 무관하게 학원과 인강과 자습을 알아서 열심히 하며 자기 성적 관리를 한다. 최하위권은 교실 수업을 하며 교사가 앞에서 깨워도 자고, 수행 평가 절대 안 내고, 시험 봐도 답안지는 한 줄로 긋고 잔다.
문제는 중위권인 다수의 학생들이다. 그들은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교사 눈치 보며 교사의 지도 대로 따라오는 경우가 많다. 학습 의지는 강하지 않지만 그래도 학교에서 이끄는 대로 움직이려고 노력하는 학생들이라 학교 변수가 크게 작용한다. 이런 학생들의 경우, 집에 있으면 스마트폰 켜 놓고 대충 공부하여 성적과 멀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학교에 나오면 교사에 이끌려서 기본은 학습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온라인 수업은 교실 수업과 달리 학습자의 적극성이 더 필요하다. 적극성은 없지만 공동체의 규율을 따르려는 다수의 학생들에게 학교가 미치는 영향을 생각보다 크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성적 하락은 학력 격차 심화, 성적의 양극화를 가져온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학생들이 황폐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학교 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규칙적인 생활도 하고, 친구들도 사귀고, 함께 밥도 먹고,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고, 고민도 나누고, 놀기도 하면서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공동체 생활 방식을 터득해 나간다. 아무리 경쟁이 치열하고, 집단따돌림이 발생하고, 교우 관계의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해도 학교가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을 우리는 지금 느끼고 있다. 학교 생활은 그 자체로서 학업 이상의 학습을 시키는 장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최소한의 공동체 생활을 할 기회조차 사라졌다.
학생들이 학업 스트레스는 계속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별화, 고립화 되면서 무력감이 더 커지고, 정서적으로 더 불안해지며, 타인들과 어울리는 것이 힘든 일이 돼 가고 있다. 어쩌다가 학교에 나오면 서로 무관심하다. 누군가 결석해도 누군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깜빡 잊고 스마트워치를 차고 시험 보는 친구를 옆에서 보면서도 미리 이야기해 주지 않고 - '너 그거 제출하고 시험 봐야 돼'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 시험이 다 끝난 후에 교사에게 신고한다. 부정행위니까 처벌해 달라고... 서로 래포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교실은 3층이라 올라가는데 힘들어서 1층에 교실이 있는 애들보다 시험 보기 힘들다'고 민원을 낸다. 공동체 생활에서 서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학생들의 모습들이 극단적으로 파편화돼 황폐해진 모습이라고 생각되는건 나만의 착각일까?
한창 어울리며 공부하고, 놀아야 할 나이의 아이들이 제대로 공부도, 놀지도 못하며 2년을 보내고 있다. 그들에게 2년은 어른들의 10년보다 훨씬 긴 기간이다. 학교 교육의 중심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학력격차보다 더 중요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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