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예쁘다와 먹다

사회선생 2021. 7. 24. 13:35

"난 이렇게 예쁜 걸 먹는게 꼭 파괴하는 것 같아서 좀 죄스럽게 느껴져."

 

전생이라는 것이 있다면 나는 귀족이나 양반은 아니었을 것 같다. 너무 정성스럽게 깎고 다듬어서 예술 작품처럼 만든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대접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진다는데, 나는 두 가지 이유로 기분이 찜찜해 진다.

 

첫째, 예쁜 것은 눈으로 보면서 그 자체로 즐겨야지 입으로 갖고 들어가는 건 그 예쁜 것을 파괴하는 폭력적 행위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예쁘다와 먹는다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호응이다. 같은 맥락으로 아이들에게 곰돌이 모양의 간식을 만들어주고, 토끼 모양으로 과일을 만들어 주면서 먹으라고 하는 것이 비교육적이라고 생각된다. 곰이나 토끼는 우리가 먹는게 아니고 귀엽고 이쁜 동물이며 지켜줘야 하는 것이라고 사회화되어야 하는데, "와 귀여워. 맛있겠다.'와 같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호응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와 멋있다. 부셔 버리자.' 이건 이상하지 않은가? 

 

둘째, 과잉 서비스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과잉 서비스는 서비스 제공자를 필요 이상으로 힘들게 한다. 돈으로 보상받는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과잉서비스는 지나친 경쟁의 산물로서 자본주의의 새로운 폭력 양상이라고 생각된다. 이는 '사랑합니다 고객님' 같은 말과 유사한데, 거기에서 사랑이 왜 필요한가? '어떤 서비스가 필요하신가요?' 정도면 되지 않는가? 아무리 자식에 대한 사랑이 넘쳐도 자기 자식에게 주는 수박을 용처럼 공들여 깎아서 먹이지는 않는다. 시간과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럼 전생에 천민이었나? 혼잣말이 들렸나보다. 식구가 옆에서 답하길, "꼭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지 마. 아닐 수도 있어." 뭐, 그게 나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나는 코끼리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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