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우리가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걸까?

사회선생 2021. 4. 30. 13:53

중간고사 기간이다. 내신 성적이 대학 입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보니 학생들은 극도로 예민해진다. 그래서 별별 민원이 다 발생한다. 맨 뒤에 앉은 학생은 다른 학생들보다 몇 초 늦게 시험지와 답안지를 받았다며 민원을 내고, 지각생을 입실시키는 바람에 신경 쓰여서 시험을 못 봤다는 민원을 내고, 감독 교사가 앞에서 움직여서 시험을 못 봤다는 민원에, 옆 친구가 기침을 했다, 운동장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심지어 나는 구겨진 시험지를 받았다는 것조차 민원꺼리가 된다. 신경 쓰여서 더 잘 볼 수도 있었던 시험을 망쳤다고 하며 정신승리를 하고 싶어하는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정말이지 생활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소한 현상까지도 자신의 유불리를 따져서 확대 해석하며 책임을 전가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을 보면 우리 교육이 제대로 가고 있는게 맞는지 회의가 든다.  

부정 행위에도 매우 예민한데,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반에서 한 학생이 아이팟을 귀에 꽂고 있다가 담임 교사에게 내지 않고, 뒤늦게 부랴부랴 가방 속에 넣어 두고 시험을 보았다. 부정 행위를 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닌 것 같다. 주변 학생들의 말에 의하면 스스로 놀래서 아이팟을 귀에서 뺀 후 가방에 넣고 시험을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본 한 학생이 시험이 모두 끝난 후에 학교에 신고를 했다. 아이팟은 전자기기이고 그것을 제출하지 않고 시험 본 것은 부정행위라는 것이다. 우연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신고한 학생이나 신고 당한 학생은 모두 그 반의 우등생(?)들이었다. 

난 그 이야기가 정말 섬칫했다. 건강한 학교 문화였다면 그 학생은 신고하기 전에 친구에게 말해 줬을거다. "야, 너 아이팟은 전자기기라 갖고 있으면 안 돼. 그거 빨리 선생님에게 제출해하고 시험 봐." 그런데 그 아이는 아이팟의 소지가 부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끝까지 관찰했다. 친구가 당황해서 아이팟을 빼는 것도 보았고, 가방에 넣는 것도 보았다. 그리고 시험이 다 끝난 후에 신고했다. "선생님, 아이팟을 가방에 가지고 시험 보는 것도 부정이잖아요. 처리해 주세요."  

친구에게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독점하려 하고, 친구가 실수하면 신고를 한다. 한 반에 있으면서 누가 왔고, 누가 안 왔는지 관심조차 없다. 우리네 입시 제도가, 우리네 학교 문화가 학생들 간의 경쟁이 관계를 단절시키고 고립시키며 모든 인간과 모든 상황을 나의 이해 관계에만 연결시켜 해석하는 이기적인 인간들을 만들어 내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스럽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이 좋은 성적으로 사회의 엘리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끔찍하게 싫다. "내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누릴 수 있는건 다 누리면서 살거야. 니들이 어떻게 살든 말든 그건 내 알 바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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