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코로나 때문에 야간 자율 학습을 못 하다가 최근 학교 재량에 맡긴다는 교육청 공문이 왔나보다. 못 한다고 해도 시킬 판인데, 재량이라니 입시를 중시하는 사립학교에서는 안 할 이유가 없다. 우리 학교에서도 ‘당연히’ 야간 자율학습을 시작하게 됐다.
그런데 20명 중에서 3명은 11시까지, 9명은 10시까지 하는 야간 자율 학습을 하고 싶다고 신청했다.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인원이었다. 한 반에 35명씩일 때에도 많아야 10명 남짓이었다. 1학년은 다 이런가 싶어서 다른 반을 봤더니 정말 성적이 낮은 반은 신청자가 10명이 넘는데, 성적이 좋은 반은 서 너 명 정도였다.
“성적은 야간 자율 학습 신청률과 반비례한다.”고 어느 동료 교사의 말에 빵 터졌다. 우연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현재 학급의 평균 성적으로만 보자면 딱 맞아 떨어지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개인의 학업 성적과 학교의 야간 자율 학습 참여 시간과는 상관 관계가 없다. 그런데 학급 평균과 야간 자율 학습 신청률 간에 부의 상관 관계가 꽤 의미있게 나타나는 점이 흥미로웠다. 다른 학년도 비슷한가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나의 질문에 동료 교사들이 분석해 주었는데, 설득력이 있다.
“학원에 안 다니는 아이들이니까 많아서 그래요. 학원을 안 다니니 성적은 별로이고, 어차피 끝나고 갈 데가 없으니 학교에 남아서 공부를 명분으로 친구들과 있는게 더 좋지 않을까요?”
“야간 자율 학습에 대한 로망같은게 있는거죠. 한 번도 제대로 공부를 해 본 적이 없으니 이거라도 하면 뭔가 공부하는 것 같은 성취감을 느끼게 되거든요. 야간 자율 학습을 한다고 하면서 정작 부모 간섭 없이 휴대폰도 할 수 있고, 얼마나 좋아요?”
하긴 야간 자율 학습을 할 때에 휴대폰을 보거나 잠을 자는 아이를 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빼앗기도 해 보고 깨우기도 해 봤지만 빼앗는건 불법이래고, 깨우는 건 소용없어서 포기하며 감독을 한다.
“어차피 야자 시작하면 한 달도 못 가서 다 빠져 나가요."
"한 달? 일주일만 하면 다 나가 떨어질거에요. 결국 진짜 공부에 뜻이 있는 서 너 명 남죠. 서 너 명은 남을 거에요. 그러니까 지금 야자실 자리 못 잡았다고 하는 아이들에게 이 주일만 기다렸다가 자리 나면 준다고 하세요.”
동료교사들과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수업에 들어갔다. 성적으로는 거의 우리 반과 쌍벽을 다툴 것 같은 1학년의 어느 반이다. 모른 척 학생들에게 던졌다.
“너희들 야간 자율 학습에 대한 로망이 있니? 늦게까지 공부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깜짝 놀랬어.”
“그럼요, 로망이 있죠.”
“무슨 로망?”
“친구와 같이 합법적으로 저녁을 사 먹을 수 있고, 밤 늦게 별을 보면서 집에 갈 수 있고...뭔가 재밌을거 같애요.”
"맞아, 맞아."
진짜 야자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한 마디 했다. “가장 긴 중간 과정 생략하고 시작과 끝에만 로망이 있구나. 저녁 먹고 자다가 별 보면서 가지는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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