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학급 정원 20명이라 좋아라 했는데

사회선생 2021. 2. 20. 17:03

학급 정원이 꾸준히 야금야금 줄었기 때문에 담임을 하면서도 학급 정원이 줄어드는 걸 크게 체감하진 못했다. 항상 현재의 비교 대상이 10년 전이 아니라 작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엔 다르다. 작년 26명에서 20명이 됐기 때문이다. 재작년 30명에서 작년 26명을 맡을 때에는 크게 줄었다는 느낌이 아니었는데, 26명을 보다가 20명을 보니 교실이 훌빈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와, 올해엔 완전 복 받았네. 이렇게 정원이 적은 반은 처음이야." 

 

1학년 담임을 맡아 신입생들을 데리고 교실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하는데, 20명 모두 마스크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잔뜩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내가 받은 명단에는 어제 본 진단고사 성적이 나와 있었는데, 20명 중 학년 석차 두 자리 숫자가 몇 명 안 된다.  옆 반 담임이 자신이 맡은 반 학생들의 성적을 보여주며 자신의 반에는 최상위권은 없다고 하는데, 내가 우리 반 성적을 보여주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반에는 학년 석차 세 자리 숫자가 몇 명 안 됐는데, 우리 반은 거의 대부분이 세 자리 숫자였기 때문이다. 공부에는 별로 취미가 없는 혹은 없었던 학생들인 것 같다. 성적을 보지 않았건만 나는 교실에서 몇 가지 학생들과 작업(?)을 하며 바로 알 수 있었다.  

 

스쿨뱅킹시스템을 사용하기 위해 각종 정보를 OMR 카드에 입력해야 했다. 학생들에게 OMR 카드를 나눠주고 큰 소리로 알려줬다. 그리고 '친절하게' 칠판에 써 줬다. 

"얘들아. OMR 카드는 예비 표기하면 안 돼. 수정 테입도 사용하면 안 되니까, 검은색 컴퓨터용 싸인펜만 사용하고, 신중하게 천천히 해. "

그렇게 '아주 쉬운 말'을 했건만 학생들은 마치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똑같은 질문을 계속 해 댔다.

 

"선생님, 수정 테이프 안 돼요?"

"선생님, 빨간색 펜으로 칠하고 검은 싸인펜으로 칠해도 되죠?"

"선생님, 틀렸어요. 바꿔주세요."

 

예비로 갖고 들어간 OMR 카드 일곱장을 다 써서 옆 반에 얻으러 가야 했다. 그래도 질문을 한 학생은 모범생들이었다. 질문도 안 하고 마음대로 예비 표기하고, 수정 테이프 사용한 OMR 카드를 낸 학생도 여러 명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나눠주고 표시하도록 해야 했다. 이런 반은 또 처음이다. 여느 때 같으면 선생님 말 좀 집중해서 들으라고 잔소리 한 마디 했겠지만 하지 않았다. 지금 1학년 첫 날이라 잔뜩 긴장해서 집중해서 듣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교사가 말하는 대로 듣지 않는다. 듣고 싶은 대로만 듣거나 듣는 척 할 뿐 듣지 않는다. 공부도 그래서 못하는거다. 수업 시간에 듣기만 해도 중간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 진리를 다시 한번 느꼈다.

 

'그나저나 뭐든 제 날짜에 제대로 일처리 하는건 포기해야겠는데... 또, 경제 수업을 어떻게 한다... 그래프 나오고 숫자 나오는 순간 얘들 대부분 안드로메다로 갈 거 같은데....' 20명이라 좋아했는데 좋아할 것만은 아니라는 현타가 왔다. '20명이라도 해도 10번은 다시 설명을 해야겠구나, 만만치 않겠다. 역시 신은 공짜로 주는 건 없네. 정말 계산이 정확한 양반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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