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게는 가장 피곤한 달이 2월과 3월이다. 2월은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3월은 육체적으로 피곤하다. 2월에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역할이 정해진다. 소위 인사권이라는 권한이 나의 삶에 훅 들어와 이리저리 휘두르는 걸 느끼게 되는 때다. 돈 받고 일하는 직업이니 내 맘대로 할 수 없는거야 당연한거지만, 조직의 권력을 체감한다는 것은 몹시 피곤한 일이다.
담임을 또 시키겠지, 몇 학년을 시키려나, 업무는 또 어떻게 배정될까, 수업은 무슨 과목을 몇 시간 하게 될까.... 1년 간 나의 학교 생활이 결정되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다. al게다가 이런 일들이 서로 협의하여 순조롭게 넘어가는 경우가 드물다. 예를 들어 나는 2학년을 원했는데 1학년을 준다든지, 나는 두 과목만 가르치고 싶었는데 세 과목을 하게 된다든지, 나는 16시간인줄 알았는데, 17시간이 된다든지 하는 일들이 생기고, 그 때부터 싸움(?)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싸움이라는 것이 교사들 간의 제로섬인데다가 그 싸움의 결과가 1년을 결정하기 때문에 치열할 수밖에 없다. 매우 피곤한 일이다. 싸움이 되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게 아니지만, 그런 방법은 관리자들 입장에서 택할 수 없다. 그건 그들의 권한이 적어지며, 동시에 업무 진행의 효율성을 훅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담임이나 업무를 교사들 간에 돌아가면서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일게다.
3월은 새로운 학생들,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며 매우 많은 행정 업무들을 해야 하는 때라 힘들다. 비담임의 경우는 그래도 좀 덜한데, 담임의 경우에는 정말 나줘주고 다시 회신받아야 할 가정통신문만 족히 20가지는 될 거다. 학생 관련 조사 보고 할 것도 부지기수지 - 누가 밥을 먹나 안 먹나, 자율학습을 누가 하나, 방과 후 수업을 누가 하나 기타 등등 - 면담도 해야지, 수업 준비도 해야지, 3월은 교사에게 가장 긴 한 달이다.
그래도 학생들은 아직 순수하고, 그래도 교실에서만큼은 자율성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어서 교직은 직업으로서 나쁘지 않다. (물론 방학도 있고,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요즘 같은 세상에는 매우 괜찮은 조건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 이유로 교직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관리자가, 동료 교사들이, 학교라는 조직이, 교육부라는 기관이 열받게 할 때가 있어도 그냥 학생과 교실만 생각하면 버틸만 하다. 오늘 담임 반 학생들이 곧 종업식이라 헤여진다며 나에게 롤링페이퍼를 만들어서 줬다. 온라인 수업이 많아서 제대로 해 준 것도 없는데, 고맙다고 좋았다고 말해 주는 학생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진다. 그래도 얘들을 보면서 한 해 또 가 보자고....
'교무수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학급 정원 20명이라 좋아라 했는데 (0) | 2021.02.20 |
---|---|
학폭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 (0) | 2021.02.15 |
보이는 대로 말고, 기대하는 대로! (0) | 2021.02.02 |
2020 교원 성과상여금 차등지급 자가 채점표(2021지급) (0) | 2021.02.01 |
성과급을 담임 수당으로 (0) | 2021.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