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한밤중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중상을 입었다. ‘다행스럽게도’ 교통경찰이 당시 사건 현장에 출동해서 사건을 조사했고, 블랙박스도 확보해 놓았다고 했다. 그런데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필요한 증거자료인 블랙박스에 녹화된 영상을 카피해 줄 수는 없단다. 이유인즉, 재산권 침해이며, 정보통신보호법 위반이기 때문이란다. 영상물이 개인 소유이며, 영상물의 내용이 개인 정보를 유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타인에게 줄 수 없단다. 그 타인이 해당 영상 속의 ‘주인공’이고, 그 영상이 교통사고를 공정하게 해결하는 유일한 ‘증거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줄 수 없다니 이해하기 힘들다.
교통사고의 시시비비를 공정하게 가리는 것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따라서 블랙박스의 영상물이 개인 소유라고 해도 공공성을 위해 확보해서 당사자들 간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일 경찰의 우려대로 개인 정보를 침해할 만한 요소가 있다면 영상의 일부나 소리를 삭제하고 주면 되지 않는가? 경찰은 가해자와 동승인의 목소리나 개인 정보, 지나가는 타인의 얼굴, 지나가는 다른 자동차의 번호판 등을 사례로 들었는데, 이 정도라면 충분히 지울 수 있지 않겠는가?
결국 경찰에게 거절당하고, 정보공개를 요청했지만 동일한 이유로 거부당했다. 민사재판을 청구해서 재판상의 증거로 요청할 때에만 받아볼 수 있단다. 결국 재판을 하라는 이야기이다. 얼마나 사회적 낭비인가? 충분히 재판 전에 서로 블랙박스로 사건의 시시비를 조금 더 정확히 가릴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그 단계를 넘어 뛰고 바로 재판으로 가라고?
대부분의 교통사고에서 가해자 측은 보험사라는 기관이 나선다. 피해자는 경험도 지식도 전무한 개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블랙박스가 있어도 기관을 상대로 개인이 손해보기 쉬운 싸움이다. 그런 상황에서 시시비비를 조금 더 정확히 따져보겠다고 하는데 국가에서 이를 막는다. “네 꺼 아니잖아. 억울하면 네 몸에 블랙박스 하나 달고 다니렴.” 이래야 할 판이다. 정말이지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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