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이 없으면 비스켓을 먹으면 될 거 아니야" 정말 이 말을 했는지, 아니면 혁명에 불을 붙이기 위해 만들어낸 가짜 뉴스인지 모르지만, 이 말을 했다고 해서 마리앙트와네트가 인간성이 나쁜 사람이었다고 보긴 힘들다. 그냥 자신이 속한 계층에 충실한 삶을 살았을 뿐이다. 다른 계층이 어떻게 사는지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을테니 몰랐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단지 머리는 좀 나쁜 사람이었다고 추측 가능하다. 자신만의 경험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하기 힘든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왕이나 혹은 왕비와 같은 사회 지도층 인사다? 그런 사회는 끝장 날 가능성이 높은데, 아니나 다를까 결국 그녀는 혁명으로 처형되고 말았다. 어떤 계층에 속했든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경험을 뛰어 넘는 지식 혹은 가치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혜훈이 26억 전세 살면서 세입자의 심정을 이해한다며 집주인이 전화오면 밥이 안 넘어간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녀의 말이 거짓이나 위선이 아닐 수 있다. 집주인이 들어오겠다며 집을 비워달라든지 전세보증금 올려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긴 할테니까... 그런데 거짓이나 위선이 아니라고 해도 문제이다. 머리가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에게 또 권력을 준다는 것은 우리 사회를 골로 이끌 가능성이 많다. 이런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려고 하는걸 보면 가끔 쓸데없는 상상을 하곤 한다. 부도덕한게 나을까, 머리 나쁜게 나을까? 이 경우에는 둘 다에 해당될까? 왜 그런 선택지밖에 없는지 슬프지만.
오래전 어느 사적인 자리에서 지인들과 아파트값에 대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자타공인 - 강남의 가장 비싼 아파트에 산다는 - 부자인 한 지인이 '한 70억은 되어야 사람이 살만한 아파트더라구요.' 라고 해서 주변인들을 모두 놀라게 했던 적이 있다. 그 때에는 그걸 허세라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성장하여 부자가 됐는지를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직선적인 한 지인은 "당신이야 결혼으로 인생을 업그레이드 해서 그렇게 사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당신처럼 살지는 않아." 일침을 놓기도 했다. 남의 41평 아파트에 가서 "어머, 소꼽장난 하는 집 같아요. 나도 이렇게 소꼽장난하는 것 같은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 100평 펜트하우스에 사는 그녀는 그 말이 진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소꼽놀이 재밌지 않은가? 빈민체험같은 관광 상품이 개발되는 이유를 알겠다. 물론 그 관광 상품의 개발은 사회적인 지탄을 받으며 없었던 일이 됐지만! 그런 사람을 인간성이 나쁜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런 사람과는 별로 친구하고 싶지는 않다. 자신만의 경험을 세상의 전부로 아는 혹은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과는 별로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인덕션은 독일제 가게나우 정도는 되어야 할 거 같아요."를 들으며 나는 마리앙트와네트가 떠올랐다.
인간은 경험에서 벗어나기 참 힘들다. 자신이 속한 계층의 문화에서 벗어나기도 힘들다. 나 역시 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지금도 실수 많이 하는데 나만 모르고 있을 수도...) 수업 시간 중에 어떤 아이가 SKY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말을 하기에 "SKY 나온다고 뭐 대단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야. 친한 친구는 연대 경영학과 나와서 현대 다니며 그냥 월급쟁이로 평범하게 살아. 너희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큰 돈 버는것도 아니야. 너무 SKY에 목숨 걸지 마. " 그 때 아이들의 뜨아했던 반응을 잊을 수 없다. "선생님, 그게 어떻게 평범한 거에요? 대기업이 얼마나 들어가기 힘든데요?" 난 평범한 월급쟁이의 삶조차 평범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다. (나의 무지함이란!)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나 밖의 세상, 우리 밖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일게다. 무릇 인간이라면 삶의 범주를 확장시킬 줄 알아야 한다. 가난하게 살아본 적은 없지만 가난한 삶의 모습을 알고, 흑인으로 살아보진 않았지만 흑인이 차별받는 것을 느끼고, 동물이 되어 보진 않았지만 동물의 고통을 알고, 그들을 우리의 그룹에 넣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점점 나만의 세계로 매몰되어 가는 것 같다. 나밖의 세상에 대해서는 관심갖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심지어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 가난한 사람인척 코스프레를 한다. 알지도 못하면서.... '26억 전세는 정말 서민이에요.' 하지 않은게 다행인가?
'세상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치킨의 나라 (0) | 2020.12.16 |
---|---|
교통사고 블랙박스가 개인재산이라... (0) | 2020.12.10 |
개에 대한 혐오감이 문제야 (0) | 2020.12.02 |
재테크를 권하는 사회 (0) | 2020.12.02 |
가까이? 적당히! (0) | 2020.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