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학교 정규 교육 과정에 논술 수업을 편성하란다. 몇 년 사이 교육 과정이 두 번이나 바뀐 것도 이게 무슨 코메디같은 상황인가 싶은데, 새로운 과목이 급조될 예정이라니 기가 막힌다.교육 과정에서 새로운 과목이 생기고 없어지는 것이 이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인지 몰랐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담당 교사도, 표준화된 교재도 원칙도 없이 가르치란다. 이런 식의 교육 정책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또 있을까? 교육부 관계자는 현장의 의견을 듣고 수렴한 결과라는데, 그들은 어쩜 그렇게 자기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들만 만나서 여론을 수렴하는지 참 궁금하다. 어떤 현장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었는지 물어보고 싶다.
'대학 입시에서 논술 시험을 보니 학생들이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도록 고등학교에서 가르쳐라' 정부의 의도이다. 그야말로 인기영합주의 정책이다. 근본적으로 대학 입시에서 논술을 다루는 것을 문제 삼아야 한다. 고등학교 정규 교육 과정에도 없는 과목(?)을 왜 대학에서 다룰 수밖에 없었는지부터 살펴 보아야 한다. 그 속을 알 수는 없지만, 대학 역시 논술 시험을 별로 달가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본고사는 금지되어 있고, 내신은 못 믿겠고, 그러다보니 대학 입장에서 궁여지책으로 나온 것이 논술 아닌가? 그들에게 논술은 그야말로 뽑고 싶은 학생들을 뽑는데 가장 도움이 되는 시험 방식이다. 입시 지도를 하면서 지금까지 대학이 논술 채점 결과를 공개하는 것도 보지 못했고, 논술 등급과 급간 차이가 몇 점인지지 발표하는 곳도 보지 못했다. 그냥 논술 60%, 논술 70% 이런 식이다. 도대체 대학 입시에서 이런 식의 시험이 존재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것도 우리나라같이 대학 입시에 목숨 건 나라에서. 그런데 정부에서는 근본적으로 논술 시험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보지도 않고, 왜 논술을 학교에서 못 가르치냐, 가르쳐라 이런 식이다.
논술이 종합적인 사고력과 표현력을 키울 수 있는 평가 방식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리고 각 과목에서 논술식의 평가 방식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평가 방식이라는 것에도 수긍한다. 그런데 이는 교사들이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고등학교 교육 과정에서는 하지 못한다. 한 학급 40명이다. 단순한 단답형 문제 채점 기준 하나만 달라져도 학부모와 학생들이 항의하고 찾아오고, 민원이 제기된다. 그런데 논술 시험으로 보라고? 그 점수가 내신에 영향을 미친다고? 어느 학교도 이런 모험을 할 학교는 없다.
논술 과목이 새롭게 편재되는 것 자체가 논술이라는 평가 방식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 사회과 교사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논술은 각 과목에서 평가 방식으로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고 본다. 즉 평가 방법일 뿐, 학문적 영역의 과목으로 독립시키기는 무리라고 본다 - 백번 양보하여 고등학교에서 논술을 정규 과목으로 편재할 예정이라면 적어도 논술에 대한 전문적인 능력을 가진 교사들을 양성해야 하고, 표준화된 교재와 성취 기준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런 식의 정책은 학교에 대한 불신만 더 가져올 뿐이다. 과연 정부의 의도대로 사교육을 잡을 수 있을까? 대학은 논술 시험 의 비중을 줄이겠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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