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 합격자 발표가 끝났다.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수시 합격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수시가 끝나면 입시가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고3 담임하면서 '넌 수시에서 안 가길 잘했다'고 했던 학생이 나의 경우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수시에 그 대학이라도 갈 걸 그랬어요'라고 뒤늦은 후회를 하는 학생들은 수 없이 많이 봤다. 올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시 대비 면담을 할 때, 자신의 현재 점수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합격 가능한 대학에 응시한 학생은 - 자의든 타의든 - 대부분 합격했다. 그러나 '전 떨어지면 재수할 거에요. 전 수시 떨어지면 정시로 갈 거에요. 지금까지 모의고사 점수는 이렇지만 수능은 잘 볼거에요.'라고 하며 불확실한 미래에만 의지했던 학생들은 대부분 고배를 마셨다. 대부분 성실하게 공부하고, 조언을 수용하며, 겸손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합격한 것 같아서 다행이다. 만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떨어졌다면, 정말 교사할 맛 안 났을거다.
합격 소식을 전해 온 몇몇 학생들의 문자 혹은 통화 내용이 기분 좋게 한다. 합격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태도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면 나도 잊지 않고 말한다.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 잊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는 걸로 효도해." 아, 이 시점에서 또 공부하라는 말을 하다니, 나도 천상 답답한 교사에서 벗어나기 힘든 캐릭터인가 보다. 그런데, 진짜 공부는 이제 시작 맞는데...
"선생님, 제가 숙대에 들어가기에는 실력이 많이 모자랐나봐요. 서울여대 아동학과에 붙은 것만 해도 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감사합니다." (언제나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넘치는 우리반의 K양)
"선생님, 전 이화여대 떨어진 줄 알고 합격자 발표 보지도 않았어요. 저 정말 붙었어요? 정말이요? 선생님 아니었으면 이화여대 쓸 생각 안 했을거에요. 감사합니다." (내 전화로 합격을 확인하며 울먹이던 D양)
"선생님, 서울대 합격했어요. 1년 동안 항상 신경 써 주시고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반의 예민한 공부벌레 L양)"
"선생님, 수시 때 선생님 말씀 안 들어서 죄송해요. 광운대 붙었어요. ㅠㅜ" (우리반의 이쁜 모범생 Y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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